[힐링노트-이지현]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입력 2013-01-25 17:52
주님은 스스로 뭔가를 해보려다 쓰러진 자녀를 비웃지 않으신다. ‘귀향’의 조건으로 죄책감과 부끄러움에 사로잡힌 채 잘못을 고백하는 걸 요구하지도 않으신다. 주님은 한없는 관용과 용서로 자녀를 안타깝게 떠나보냈다가 돌아오기만 하면 반가이 집안으로 맞아들이신다.
우린 매일, 매시간 떠나고 돌아오길 반복한다. 그 과정에서 힘겨운 시간을 만나기도 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집으로 돌아간다’의 영적의미는 무엇일까. 헨리 나우웬(Henri J. M. Nouwen 1932∼1996)은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자녀라는 자아상을 단단히 붙들고 고향을 향해 걷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헨리 나우웬은 대표작 ‘탕자의 귀향’을 쓰기 3년 전, 신경쇠약에 시달리는 심신을 치유하기 위해 은거생활에 들어갔다. 고독한 그 시기에 그는 누가복음 15장의 이야기를 화폭에 옮긴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향’을 대면하면서 내면의 깊은 변화를 경험했다. 그는 복음서의 이야기와 자신의 삶을 연결지었다. 그의 내면에 집 나간 작은아들이 품었던 방탕한 삶에 대한 욕망과 집을 지키며 살지만 내면에 원한을 쌓아가는 큰아들의 굳어진 마음이 공존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어린시절부터 두 갈래 선명한 목소리에 사로잡혀 살았다. 하나는 “세상에 나가 성공해야 하며 네 힘으로 이뤄낼 수 있다는 신념을 잃지 말라”는 아버지의 음성이었다. 또 하나는 “죽는 날까지 지극히 사소한 일 하나라도 예수님 사랑에 의지하라”는 어머니의 얘기였다. 그는 두 가지를 다 만족시킬 수 없었기에 늘 고독했다. 예일대학과 하버드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그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해 종종 일터에서 물러났다. 마침내 그가 안착한 곳은 지체장애자들의 공동체 라르쉬 데이브레이크였다. 그는 이곳에서 우리가 돌아가야 할 집은 결국 ‘아버지의 마음’이란 것을 알게 됐다.
결국 ‘집에 머문다’는 것은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고 그분의 마음속에 거하는 것이다. 또 ‘집으로 돌아간다’는 건 예수님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는 삶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선하고 고통스럽기도 한 일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그 여정에서 상처를 주는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는 참을성과 용기를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지현 기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