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빈 칼럼] 한국이, 한국교회가 희망입니다!
입력 2013-01-25 17:50
수년 전, 미국 출장을 갔다가 매우 인상적인 경험을 했다. 한 자선단체를 방문하던 중에 복도에서 일단의 흑인 청년들과 마주쳤다. 이들은 아이티에서 온 대학생들이었는데, 당시 아이티는 큰 지진으로 엄청난 고난에 직면해 있었다. 젊은이들은 우리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그 젊은이들이 우리 일행을 만나 처음으로 말한 내용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한국은 저희에게 희망입니다. 특별히 한국교회는 우리에게 희망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선진국을 부러워하며 살았는데, 처음 보는 이국의 청년들이 우리나라와 우리 교회를 자신들의 희망이라고 하다니. 참으로 놀랍고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들은 대한민국보다 부유하고 잘사는 나라들을 알고 있었다. 이 나라들은 아이티를 한국보다 더 많이 도와줬다고 한다. 그러나 이 나라들은 가난한 현대사를 가지고 있지 않고 일찍부터 풍요롭게 살았던 국가들이다. 그렇기에 아이티 젊은이들은 이들 나라의 원조를 받으면서도 좌절감과 절망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아이티만큼 비참한 상황에 있던 나라라는 것을 알고 나니 아이티 젊은이들이 다른 선진국에서 받지 못하는 도전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도 노력하면 저렇게 될 수 있다는 구체적인 비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더욱이 한국 사회가 발전하는 데 교회와 신앙인들이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고 나서, 신앙인으로서 자부심과 기쁨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들 기독 청년들도 조국 아이티의 부흥을 꿈꾼다.
아이티 청년들과 예상치 못했던, 그러나 참으로 기분 좋았던 만남은 무엇보다 우리를 이렇게 이끌어주신 하나님께 다시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했다.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에 각별한 사랑과 은혜를 베푸셨다. 그러나 이러한 감사하는 마음은 이내 책임감을 크게 한다. 과연 우리는 이런 엄청난 은혜에 제대로 감사하면서 살고 있는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감사하는 사람답게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독일어로 은혜를 가베(Gabe)라고 한다. 가베(Gabe)에 전치사 아우프(auf)를 더하면, 아우프가베(Aufgabe)가 된다. 아우프가베(Aufgabe)란 은혜로부터 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단어의 우리말 의미는 바로 ‘책임’이다. 즉 은혜를 받은 사람은 그만큼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와 수천 리 떨어져 있는 나라에 사는 청년들이 우리를 희망으로 바라보는 상황은, 그 자체가 은혜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은혜가 더욱 큰 책임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과연 그만한 책임을 감당하고 있는가. 우리가 세상 사람들의 칭찬을 받으려고 신앙인의 사회적 책임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사회적 책무를 요란하게 말해 세상으로부터 비난받는 일을 피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온몸으로 체험한 이들이 삶으로 드리는 감사이다. 감당할 수 없는 은혜를 받은 이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당연한 책임이다. 즉 이웃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고 나누는 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는 여러 가지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2013년 한국사회의 대표적 트렌드가 신경증적 히스테리라는 진단이 나올 정도이다. 모든 사람이 고슴도치 같이 서로 날을 세우고 서로 간에 거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각박하고 팍팍한 삶을 산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렇게 고단한 삶을 희망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의 인간, 즉 타락한 인간의 특징은 자기중심적이다. 하나님만이 판단하시던 선과 악마저 인간 자신이 판단하겠다고 할 정도로 인간은 자기중심적이다. 성경은 이것을 죄라고 하였다. 하나님 없이 내 중심으로 살겠다는 것, 이것이 곧 인본주의이다. 결국 죄인인 인간은 항상 자기만을 보려고 하며, 항상 자신의 육신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충족시키기 위해 애쓴다. 그렇기에 자신 주위에 있는 이웃을 살필 여유가 없다. 더욱이 우리 위에 계신 하나님을 쳐다볼 여유는 더욱 없다. 그저 현실이 만족스러우면 즐기고 부족하면 불평할 뿐이다.
과연 오늘 우리 한국교회는 어떠한가. 우리들은 주위의 이웃을 둘러보며, 위로 하나님을 앙망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내 희망은 먼 나라의 청년뿐 아니라 우리 한국의 청년들로부터도 ‘교회가 희망입니다’라는 고백을 듣는 것이다.
(장신대 교수·기윤실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