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전쟁] 박세환 재향군인회 회장 “잊혀져가는 전쟁 참전용사 보상 인색 보은의 마음 가져야”
입력 2013-01-24 19:30
전쟁은 잔인했다. 셀 수 없는 젊음이 총탄에 사그라졌다. 그 전쟁은 올해로 60년째 멈춰서 있다. “어느새 전쟁의 잔상은 흐릿해져 국민들의 안보의식은 약해지고, 참전용사들에 대한 관심 또한 잊혀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재향군인회(재향군인회) 박세환(72) 회장은 현 세태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에게 6·25는 ‘잊혀진 전쟁’이 아닌 ‘끝나지 않은 전쟁’이다. 그는 정전 60주년을 맞아 국민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전쟁을 겪어낸 120만 6·25 참전용사들과 850만 향군회원을 대신해 절대 우위의 대북 안보태세가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인터뷰는 지난 23일 서울 성수동 재향군인회관에서 이뤄졌다.
<만난 사람=최현수 군사전문기자>
정전협정 60주년의 의미는 무엇인가.
“정전협정 체결 이후 북한의 도발이 2800여건에 이른다.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다. 정전 60주년은 60년 전 전쟁의 의미를 되새기는 한 해가 돼야 한다. 당시 전투에서 전사하고 부상당한 참전용사들의 공적을 기리고 보훈정책을 가다듬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해외 참전국들과 참전용사들에게 진정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 한다. 그리고 정전을 마무리하고 진정한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국민들의 지혜를 모으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정전 60주년을 맞아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안보가 가장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국방에 대해 더욱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일본이나 중국은 지금도 군사력을 키우고 있다. 그러나 북한과 직접 대치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국방비는 올해도 4000억원이 삭감됐다. 국민 복지를 위해서 국방비를 삭감한다고 하는데, 순서가 잘못됐다. 안보 없이 국가의 복지는 없다.”
-재향군인회는 안보를 위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해마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도발 사건의 희생자 추모제를 재향군인회가 주축이 돼 주관한다. 재향군인회는 1000만명 서명운동을 벌여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및 한미연합사 해체를 2015년으로 연장하는 데 공헌했다. 재향군인회는 전작권을 재연기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안보가 보장되지 않으면 경제발전도 평화도 없다. 미군이 철수하면 북한이 마음 놓고 도발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정전체제가 평화체제로 전환돼야 할 텐데.
“당연하다. 하루빨리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구축돼야 한다. 국민들이 전쟁의 공포와 전쟁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돼야 한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선결조건이 있다. 우선 우리가 대북 절대우위의 군사력을 갖는 것이다. 힘이 약한 나라가 아무리 평화를 외쳐봐야 힘이 센 침략자를 대항해 낼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굳건한 한·미동맹이 필수다. 미국은 7300억 달러의 국방비를 쓰는 군사 초강대국이다. 미국을 제외한 지구상의 모든 나라 국방비를 합쳐도 미국 국방비만큼 되지 않는다. 동시에 북한이 핵과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해야 한다.”
-현재 6·25 참전용사들 대부분이 어려운 형편이라는데.
“6·25 참전용사는 총 120만여명이다. 그중 현재 생존해 있는 분은 18만명 내외다. 그들 대부분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전쟁터에서 싸우느라 돈 벌 기회가 없었고, 돈이 없다 보니 자녀교육을 잘 시킬 수 없었다. 가난이 대물림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이분들에게 드리는 참전수당은 월 15만원이다. 그것도 최초 시작된 2000년 6만원부터 시작해서 지난해 12만원, 올해 15만원으로 인상된 것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운 전쟁영웅들에게 너무 인색한 대우다.”
-향군에서는 6·25 참전용사를 위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무엇보다도 참전용사에 대한 감사와 보은의 마음을 전 국민이 갖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향군은 젊은이를 대상으로 전국 차원의 각종 안보 강연을 통해 청소년들의 보훈의식을 제고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 왔다. 또 참전수당을 인상하고 6·25참전유공자회가 ‘국가유공자단체’로 지정되도록 하는 데 앞장서 왔다. 6·25참전유공자회가 국가유공단체로 지정됐지만 아직은 명분만 유공단체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국가유공자 혜택을 받도록 힘을 모으고 있다. 매년 6·25 참전용사 등 장기복무제대군인 1000여명을 선발해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참전용사 후손을 돕기 위한 장학기금도 100억원을 목표로 모으고 있다. 현재 32억원가량 모아졌으며, 매년 참전용사 후손 등 250여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하고 있다.”
-미국은 올해를 정전 60주년으로 맞아 대대적 행사를 연다고 하는데.
“미국의 참전용사에 대한 극진한 예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산골 마을에도 참전용사들의 이름이 적힌 동상이나 기념비를 흔하게 볼 수 있고, 어디든 전사자 유해가 돌아오면 주민들이 함께 조의를 표하고 영웅시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동료를 구하다 부상한 살바토르 준터 하사와 르로이 페트리 상사에게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직접 훈장을 수여하고 그 공로를 기리기도 했다. 이처럼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부터 6·25전쟁, 베트남전, 아프간전에 이르기까지 세계평화를 위해 전투에 참여했다가 산화했거나 부상한 참전용사들을 영원히 잊지 않는다. 미국은 재향군인의 날이 국가공휴일이다. 부국이 있기에 강병이 있는 게 아니라 강병이 있기에 부국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강병은 국민들의 보훈의식에서 나온다고 본다. 미국은 한국전쟁 참전에도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이태식 전 주미대사가 미국 상·하원 의원들을 만날 길이 없어 고민하다가 수소문 끝에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의원들을 찾아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매우 반갑게 맞아 줬다고 했다. 전쟁은 참혹했지만 참전용사들의 피가 외교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전 60주년을 맞아 향군의 계획은.
“향군에서는 국가보훈처와 함께 1975년부터 유엔참전용사와 가족에게 감사와 위로를 전하기 위해 21개국 2만9000여명을 초청해 재방한 행사를 개최했다. 한국을 다시 방문한 참전용사들은 한결같이 자기들이 목숨 바쳐 지켜준 대한민국이 이토록 발전했다는 데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한국전에 참가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아울러 지금은 참전용사의 2세들이 한국을 방문하고 있다. 이 행사는 정전 60주년을 맞은 올해도 계속될 것이다. 특히 보훈처는 정전 60주년을 맞는 올해 유엔참전용사에 대한 격조 높은 보은행사를 실시하고, 각국 국민들에게 6·25전쟁의 의미를 상기시켜 참전국과의 혈맹우호관계를 더욱 다져나가기 위한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향군도 적극 지원할 예정이다.”
◇ 박세환 회장은
박세환 회장은 ROTC 1기다. 1963년 소위로 임관했으며 월남전에 자원해 한국대사관을 지켜냈다. 또 ROTC장학금 모금운동을 제창해 매년 ROTC 후보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게 했다. 사단장 시절부터 군사령관에 이르기까지 국민과 함께하는 군의 활동상을 몸소 실천하고 ROTC 출신 최초 4성 장군으로 전역했다.
전역 후 박 회장은 15∼16대 국회 국방위원으로 활동하며 공익근무요원의 순직이나 공상을 국가유공자 예우차원에서 보상받도록 했다. 군인연금 수혜자들의 권익을 보장하는 법률 개정, 특수임무유공자 보상을 위한 법률안을 제정하기도 했다. 아울러 국방·군용시설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마련했고, 한미연합사령부와 유엔사령부 이전반대 결의도 적극 추진했다. 2009년부터 재향군인회 33대 회장을 맡고 있으며 2011년 5·16민족상(안보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경북 영주(72) △안동고·고려대 정치외교학과 △ROTC 1기 △제1군사령부 참모장 △제8군단장 △교육사사령관 △제2군사령관 △15·16대 국회의원 △대통령 통일고문(현) △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
정리=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