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과 중개무역 가장 1조원 해외로 빼돌려

입력 2013-01-24 19:26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부장검사 이성희)는 24일 이란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 간 중개무역을 가장, 이란중앙은행 명의계좌에서 1조948억원을 부정 수령해 해외로 빼돌린 혐의(외국환거래법·관세법 등 위반)로 국내 무역업체 A사 대표 정모(73·재미교포)씨를 구속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정씨는 2011년 한국과 두바이에 사무실을 차리고 두바이 소재 M사를 통해 이탈리아산 대리석 등 석자재를 수입한 뒤 이를 이란의 F사에 수출하는 중개무역 허가를 받았다. 그는 같은 해 2∼7월 한국은행과 지식경제부 산하 전략물자관리원에 위조서류를 제출한 뒤 1조948억원 상당의 중개무역이 이뤄졌다고 신고해 기업은행에 개설된 이란의 원화계정에서 수출대금 명목으로 이를 인출했다.

정씨는 이중 1조778억원을 달러나 유로화로 환전해 F사가 지정한 해외 9개국에 송금하고 170억원을 커미션 조로 챙긴 혐의다. 정씨는 커미션 중 107억원을 미국 앵커리지에 아들 명의로 세운 페이퍼컴퍼니로 보내 주택과 차량 구입비 등으로 썼다.

유엔과 미국의 대이란 무역제재에 따라 한국은 무기 제조·운반 등에 이용될 수 있는 물품을 이란과 거래할 수 없다. 석유나 공산품 거래 때도 달러나 유로화 결제가 안 된다. 따라서 우리 기업이 이란에 공산품을 수출할 경우 이란 기업은 대금을 이란중앙은행에 넣고 이란중앙은행은 해당 금액을 우리 기업에 제공하라는 지급확인서를 국내 은행에 보내는 방식의 원화결제시스템이 생겼다. 수출·수입 대금이 자국 화폐로만 지급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검찰은 F사가 달러나 유로화를 구하려고 정씨와 공모해 원화결제시스템을 이용한 환치기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정씨가 송금한 나라는 유럽의 주요 선진국들이 모두 포함됐고 수취인 명의도 개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수취인 신원을 확인하지 못해 1조원의 행방은 묘연한 상태다. 검찰 관계자는 “미국 재무부 산하 기관에서 관련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씨는 중개무역을 허가받는 과정에서 전략물자관리원에 해외 인터넷 쇼핑물에서 얻은 건축자재 사진을 편집해 제출했다. 한국은행에는 위조한 물품송장 서류와 계약서를 냈다. 그러나 두 기관은 별도의 확인작업 없이 서류심사만 진행해 거래를 승인했다. 5개월간 1조원대 매출을 올린 정씨 회사는 42.9㎡(13평) 규모의 오피스텔에 여직원 1명만 근무하는 페이퍼컴퍼니였지만 심사 과정에서 적발되지 않았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