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 경찰관들은 ‘도피의 달인’?… 5년 새 드러난 것만 20명 잠적

입력 2013-01-25 00:31

‘룸살롱 황제’ 이경백 사건에 연루된 경찰관 3명이 지난 17일 돌연 행방을 감춘 뒤 일주일째 잠행을 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검사 박성진)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위해 청구한 구인장은 지난 23일 만료된 상태다. 이 사건으로 잠적한 경찰관만 벌써 5명째다. 이들 중엔 현직 일선서 수사과장도 포함돼 있다. 비리 경찰이 수사선상에 오르자 잠적해 버린 사례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1월 조희팔 다단계 사기사건 당시에도 조씨 측근으로부터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던 대구 북부서 안모(44) 경사가 잠적했다. 2011년 11월 터진 ‘함바 비리’ 사건에 연루된 서울 송파서 김모(53) 경위도 자취를 감췄다가 11일 만에 검거됐다. 비리 혐의가 드러난 뒤 잠적했던 경찰관은 2008년 이후 공개적으로 알려진 것만 20명이 넘는다.

‘범인검거 전문가’인 경찰관들이 사건에 휘말렸을 때 ‘잠적’을 택하는 이유는 뭘까. 우선 경찰관은 일반 범죄자들보다 형사처벌에 대한 불안감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24일 “징역형을 받고 교도소에 들어가 그동안 자신이 잡아넣은 범죄인들과 함께 지내야 하는 데 대한 두려움이 컸을 것”이라며 “교도소 생활보다는 차라리 도피 생활의 불편함이 낫다고 여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 일선서 경찰관은 “경찰은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기 때문에 비리에 연루되면 금방 이슈가 된다”며 “쏟아지는 비난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쳐 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관들은 도피방법을 잘 알기 때문에 잠적을 한다는 해석도 있다. 이종화 경찰대 교수는 “경찰관은 수사기법을 알기 때문에 일반 범인들보다 도피수법을 더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2011년 6월 유사석유 공장에 단속 정보를 알려준 혐의로 조사를 받다 사라진 인천 연수서 김모 경사는 아직도 수사망을 피해다니고 있다. ‘이경백 사건’에 연루된 한 경찰관도 지난해 4월 자취를 감춘 뒤 9개월째 행방이 묘연하다. 검찰 관계자는 “이 경찰관을 추적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며 “출국금지 상태이기 때문에 국내에 있겠지만 밀항이라도 했다면 붙잡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처벌수위를 낮추기 위해 전략적으로 잠적하는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이슈가 된 사건은 형을 무겁게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잠시 몸을 숨겼다가 관심이 줄어들었을 때 조사를 받으려는 속셈이라는 것이다. 한 경찰관은 “여론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려 ‘소나기는 피해보자’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일선서 경찰관은 “피의자가 잠적하더라도 가중처벌할 수는 없지만 수사에 순순히 응하면 감경 사유가 된다”며 “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경찰관이 잠적한다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도주한 경찰관들은 통상 체포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앞두고 소속 경찰서에 병가나 휴가를 낸 뒤 잠적한다. 경찰서는 경찰관이 일정기간 이상 근무지를 이탈하면 해당 경찰관에게 출석 요구서를 발송하고 관보에 징계위원회 개최 일정을 통보한다. 장기간 연락이 안 되면 통상 파면하고 이후 신병이 확보되면 민간인 신분으로 비리 관련 재판을 받는다.

이용상 김미나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