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준 총리 후보 지명] 역대정부 첫 총리 공통점은 안정·화합형
입력 2013-01-24 21:52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역대 정부의 초대 총리를 들여다보면 인선의 제1원칙이 ‘안정과 화합’이었음을 알 수 있다. 대통령이 자신의 약점을 적절히 보완해 줄 인사를 총리로 골랐다는 점도 눈에 띈다.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이던 2008년 1월 28일 한승수 전 경제부총리를 총리 후보자로 지명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한 후보자는) 다양한 국내외 경험과 글로벌 마인드, 국민화합에 매우 적합한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한 전 총리는 1970년부터 18년간 서울대 교수로 일하며 경제학을 가르치다 상공부 장관, 주미 대사, 경제부총리, 외교통상부 장관, 유엔 기후변화 특사 등의 경력을 쌓았다. 실용정부를 표방한 이 대통령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암운이 몰려오던 상황에서 경제통을 낙점했다. 학연(연세대)과 출신 지역(강원도 춘천)에서도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논란을 완화시켜 줄 인물로도 여겨졌다. 한 전 총리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이종사촌 형부이기도 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초대 총리로 연륜과 안정감을 두루 지닌 고건 전 총리를 선택했다. 그는 총리와 서울시장, 3번의 장관을 거치며 이미 ‘행정의 달인’이라 불렸다. 노 전 대통령이 원했던 구도는 ‘개혁 대통령-안정 총리’ 그림이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2004년 탄핵사태로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면서 고 전 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에 올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끝날 때까지 국정공백을 메워야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초대 총리는 대선 이전부터 김종필 전 자유민주연합 총재로 정해져 있었다. ‘DJP연합’에 따른 권력 분점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반대로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통과되지 않아 김 전 총재는 5개월 넘게 총리 ‘서리’라는 꼬리표를 달아야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황인성 전 전북도지사를 초대 국무총리로 지명했다. 대선 과정에서 극도로 표출된 지역감정을 무마하기 위해 호남 출신 인사를 화합형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와 측근 실세들이 비선라인을 통해 주요 국정을 운영하다 보니 ‘허세 총리’라는 오명이 붙기도 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도 군사정권 연장이란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이현재 전 서울대 총장을 초대 총리로 모셔왔다. 이 전 총장은 서울대 총장으로 재직하던 1985년 미국 문화원 농성사건에 연루됐던 대학생들을 옹호하다 경질된 이력을 가진 경제학자였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