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나잇값 하라고? NO!… 지금은 ‘어모털族’의 시대
입력 2013-01-24 18:25
어모털리티/캐서린 메이어/퍼플카우
“내가 어렸을 적에 좋아했던 모든 것을 지금도 좋아합니다. 내 취향은 정말로 전혀 변하지 않습니다. 쭉 그래왔어요.”(사이먼 코웰·53·음반기획자 겸 ‘아메리칸 아이돌’ 심사위원)
“내게 아주 놀라운 사실은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휴 헤프너·86·성인잡지 ‘플레이보이’ 창업주)
‘나잇값 하라’는 말, 이젠 사라져야 할 것 같다. 바야흐로 ‘어모털리티’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나이를 떠나 자신이 원하는 나이에 머물러 사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인생의 어느 시점이 되면 적당히 알아서 뒷자리로 물러나야 하고 옷도 점잖게 입어야 한다는 등 나이에 대한 문화적 통념은 엷어지고 있다. 위에서 예로 든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 반대 현상도 있다. 한창 청소년기임에도 요즘 아이들은 마치 성인 같은 섹시함을 추구한다. 청소년기, 청년기, 중년기, 은퇴기, 노년기 등의 ‘나이에 맞게’라는 수식어는 우리 사회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일견 모두가 느끼고 있는 이런 사회적 현상이 새삼 눈에 늘어오는 건 ‘조어(造語)’의 힘이다. 어모털리티(amortality)는 죽을 때까지 나이를 잊고 살아가는 현상을 의미하는 신조어. 미국 시사주간 타임의 유럽 총괄 편집장인 저자 캐서린 메이어는 커버스토리를 쓰면서 ‘어모털(amortal)’이라는 조어를 만들었다. 모털(mortal)은 ‘영원히 살수 없는’이라는 뜻인데, 여기에 부정을 의미하는 ‘어(a)’를 붙여 ‘영원히 늙지 않는’이라는 의미를 담아낸 것이다. 저자의 말마따나 그는 단어를 만들어냈을 뿐 현상을 발명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포장이 달라지면 다른 상품으로 보이듯 ‘어모털족(族)’이라는 신조어로 멋지게 포장한 사회 현상은 신선하게 다가온다. 저자는 나름의 논리적 구성력으로 그 현상 자체와 그 현상이 대두하게 된 배경을 분석한다. 나아가 그 현상이 낳을 수 있는 부작용까지 짚어낸다.
무엇보다 어모털족이 바꾼 건 노동과 직업의 개념이다. 어모털족은 평생 일한다. 유명 인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은퇴 후에 새로운 직업을 갖거나 새로운 활동을 하는 사례는 부지기수 아닌가. 젊음을 사기 위해 기꺼이 돈을 쓰고, 나이를 잊게 해주는 과학기술이 등장하고, 나이에 대한 문화적 개념도 자연스레 달라진다.
상업 자본도 이 현상을 가속화시킨다. 정력제 비아그라, 젊음을 유지시켜주는 효소가 들어 있다는 건강보조식품 ‘TA-65’ 등에서 보듯 제약업계는 불멸을 향한 욕망을 조장하고 화장품 업계는 가짜 희망을 만들어낸다. 기존의 소비 패턴에 변화가 오면서 기업들은 난감해하기도 하지만, 이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저자는 어모털족이 사회 제도까지 바꾸는 힘을 가졌다는 데 주목한다. 가장 두드러진 게 가족의 재구성이다. 비혼과 만혼, 낮은 출산율, 외동아이 증가, 입양 등 다양한 가족형태가 등장한다. 사랑조차도 과거와 달라졌다. 어모털족의 나이를 잊은 청춘의 감정은 끝없이 사랑을 추구하게 만든다. 길어진 수명만큼 섹스 수명도 늘어나고 황혼의 이혼과 황혼의 카사노바도 증가한다.
책이 딱딱하지 않은 건 어모털리티 현상을 유명 인사 혹은 주변 사례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여자는 나이가 들면 할리우드 영화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불문율을 깬 미국 배우 메릴 스트립, 음반 유통사업에서 시작해 우주사업까지 나서는 등 끊임없이 새로운 비즈니스를 꿈꾸는 영국 버진 그룹의 리처드 브랜슨 회장….
스페인 가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는 어모털족의 아이콘이라고 할만하다. 그는 아버지가 89세에 재혼해 낳은 아들이면서 그 자신 축구 선수였다가 자동차 사고를 만난 후 가수로 전환했다. 미국 워싱턴 정가의 아름다운 커플이었으나 60세가 넘어 이혼한 앨 고어 전 부통령 부부도 어모털족의 사례다.
인간적으로 와 닿는 건 저자의 가족 사례다. 81세까지 열한 권의 책을 썼고 지금도 주제를 고민하고 있다는 아버지, 회사에 나이를 속였다가 65세에 연금수령자라는 사실이 들통 나면서 해고되자 컨설팅회사를 차렸다는 어머니 얘기는 어모털리티 현상을 피부로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저자는 서문에서 독자들에게 이렇게 묻는지 모르겠다. “당신에게 이 책은 낯선 새로운 종족에 관한 가이드인가, 아니면 당신 자신에 관한 보고서인가.” 황덕창 옮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