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나무의 속삭임 “네가 본 게 전부가 아니야”… 오광진 우화소설 ‘물 한 잔과 토마토 두 개’

입력 2013-01-24 18:17


오광진(42·사진)이라는 작가가 있다. 고향인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에서 자연을 벗 삼아 전업 작가로 살아가고 있는 그는 한때 장편 ‘잡초어매’ ‘지워지지 않는 그림자’ ‘한 줄의 편지’ 등을 펴내며 필명을 알렸으나 8년 전부터 이렇다 할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다. 그가 긴 침묵을 깨고 우화소설 ‘물 한 잔과 토마토 두 개’(문이당)을 냈다.

우선 저간의 소식이 궁금해 전화를 걸었다. “사유적인 면에서 인생을 관조하는 제 눈높이가 낮았다는 걸 알게 됐지요. 나를 비롯해 타인의 마음을 보고자 하는 성찰의 시간을 보냈다고나 할까요. 글을 발표하지 않는 동안에도 일종의 탐구자로 살았습니다.”

차분하면서도 다소 어눌한 목소리가 오히려 신뢰감을 주었다. 그건 어떤 의미에서 천진한 아이 목소리 같기도 했는데, 이번 작품에 등장하는 어린 천사 가브리엘과 어떤 친연성이 느껴지기도 했다.

소설은 입사시험에 실패한 뒤 세상 속에서 혼자만 패배자가 된 것 같아 괴로워하는 ‘나’ 앞에 어린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함께 세상을 돌아보는 여행을 시작하는 것으로 설정된다. 시공간을 초월한 여행을 통해 ‘나’는 바람이나 동식물과도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이 생각한 세상의 모습이 전부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가브리엘이 안내한 소나무와의 대화는 이렇다. “이 시대에서 요구하는 게 있다면 대학 졸업장일 것이다. 결국 나는 이 대학 졸업장 하나로 평가되는 것이다. 생각이 거기에 머물자 왠지 서글퍼졌다. 내가 말을 잇지 못하자 소나무는 재차 물었다. ‘왜 말을 못하니? 너도 너의 가치를 정확히 모르는구나. 그래서 나는 네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35쪽)

이 뿐만 아니라 모래바람과의 대화도 ‘나’를 일깨운다. “네 잎 클로버가 행운이라면 세 잎 클로버는 행복인데, 사람들은 네 잎 클로버만 찾으려고 하지. 물이나 공기처럼 너무 평범해서 널려 있는 행복을 쳐다보지도 않는 게 사람의 습성인 것 같아. 정작 중요한 것은 그것들인데 말이야.”(86쪽)

오광진은 “사람에게 깃들어 있는 영혼의 향기, 즉 영향(靈香)을 글에 담고 싶었다”며 “옛 성인들이 현학적이 아닌 지극히 평범하고 보편적인 말로 우리에게 진리를 전해준 것처럼 제 소설도 가장 쉬운 이야기로 사람을 살리는 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