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 뒤에 감춰진 ‘가족’의 맨얼굴… 절필 선언한 소설가 고종석 마지막 장편 ‘해피 패밀리’

입력 2013-01-24 18:17


지난해 9월 “내가 쓴 글과 책이 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며 절필을 선언한 소설가 고종석(54). 그가 절필하기 전인 2011년 7월부터 9월까지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에 연재했던 장편 ‘해피 패밀리’(문학동네)를 냈다. 그는 지난 주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소설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전화로 알려왔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려고 하느냐”고 묻고 “어떻게 되겠죠”라고 대답하는 그 짧은 순간에 ‘절필작가의 신간 소설이라니’라는 미묘한 비틀림 같은 게 뇌리에 스쳤다.

이 생계무책의 작가는 자신이 퍼질러놓은 문자 행위를 한 권의 책으로나마 묶는 것으로 수습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책엔 ‘작가의 말’도, 작가 사진도 없다. 글쓰기에 대한 그의 근원적 회의처럼 소설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가장 친근하고 가깝다고 여겨온 ‘가족’이라는 구성원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담고 있다.

“글을 쓰든 안 쓰든 나는 위선자다. 나는 그걸 안다. 내 가족에 대해서도, 내 술친구들에 대해서도, 세계에 대해서도 나는 위선자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나는 위선자다. 그러나 글을 씀으로써 그 위선을 더 크게 만들고는 싶지 않다. 나는 어떤 글도 쓰지 않을 것이다.”(26쪽)

소설 속 출판사 편집장으로 일하는 한민형의 목소리이지만, 여기엔 절필을 선택한 작가 자신의 입장이 묻어난다. 민형의 아버지이자 출판사 사장인 한진규는 또 어떤 사람인가. “내가 정말 이 아이를 아낀 것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새삼 든다. 나는 그저 그 아이에게 나 자신을 투사해 내 욕심을, 좌절된 욕심을 채워보고 싶었던 거라는 생각 말이다. 그렇다. 이 아이에 대한 내 사랑은 위장된 사랑이었다. 대리만족을 위한 사랑. 사랑이라는 말에 결코 값하지 못하는 사랑.”(52쪽)

이런 독백을 통해 드러나는 한씨네 가족들은 철저히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나아가 직접 입양해온 딸 영미를 철저히 필요에 의해서 물건처럼 대하고 심지어 그런 태도를 아무렇지 않게 정당화시키는 어머니 민경화의 모습은 이들을 정말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의심케 한다.

“내가 영미에게 늘 따뜻한 엄마는 아니었다는 건 인정한다. 그러나 민희나 민주도 나한테 싫은 소리를 많이 들으며 자랐다. 나는 영미에게 은혜를 베푼 것뿐이다. 그 아이의 엄마가 됨으로써, 올데갈데없던 애를 내 딸로 삼음으로써. 영미는 집안일을 통해 그 은혜를 아주 조금 갚은 것뿐이고, 영미에 관한 한, 나는 세상에 부끄러울 게 없다.”(64쪽)

가족 구성원들의 이런 독백을 들을 수 있는 건 독자일 뿐, 이들의 목소리는 다른 가족들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모두들 위선을 안고 살아가지만 그 위선을 털어놓지 못한다. 그건 가족의 평화를 위한다는 위선이다. 그러니 그 위선마저도 진짜 위선인지 의심케 되는 것이다. 한민형의 아내 서현주의 독백이 그것. “내 위선은 지혜로운 위선이다. 가족들 사이에 평화를 만들어내는 위선. 가족들 사이에 사랑을 만들어내는 위선. 비록 그 평화가 당장이라도 바스러질 듯 위태위태한 것이고, 그 사랑이 보기에만 아름다운 치장일 뿐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82쪽)

하지만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위선이 있기에 그나마 가족이라는 구성원이 유지되는 것은 아닐까. 위선이 있긴 있지만 그게 최소한의 행복을 보장한다면 가족이 깨지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소설은 어쨌든 함께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아직은 희망이라는 우리 시대, 일그러진 가족의 자화상을 그려 보인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