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희성] 家業
입력 2013-01-24 18:52
몇 년 전 서울 강남의 한 중학교에서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본 일본의 문화산업과 일본인’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했던 적이 있다. 30분으로 잡은 질의응답 시간이 1시간으로 늘어날 만큼 꽤 질문이 많았는데 그 중 한 학생이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선생님, 일본에서 갖고 싶은 것을 딱 하나만 고르라면 무엇을 고르실 건가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질문이었고 내심 갖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바로 답하기 참 어려웠다. 아마 ‘장인정신’이라고 두루뭉술하게 대답했던 것 같다.
그 질문을 지금 받는다면 뭐라고 답할까. ‘가업(家業)을 잇는 문화’라고 보다 정확하게 방점을 찍어 대답해주고 싶다. 일본에 갈 때마다 부럽다고 느끼는 것이 유서 깊은 가게가 많다는 것이다. 50, 60년은 일도 아니고 1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가게도 내세울 것이 못될 정도다. 교토의 주방이라고 불리는 니시키 시장에는 20대째 400년을 이어온 가게도 있다. 일본도나 샤미센같이 특별한 물건을 파는 것도 아니다. 일상적으로 즐겨 먹는 고등어 스시 가게가 그렇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며 400년간 지켜온 맛과 신뢰를 팔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또 다른 스시 가게 사장의 방송 인터뷰 중에 그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가업을 잇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가게의 이름을 지키는 것이고 그것은 대를 이어 우리 가게에 와 주시는 손님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꼭 지켜야 할 약속이다. 그러니 나카무라씨가 되든 김씨가 되든 그 약속은 반드시 이어가야 한다.” 그들에게 가업의 계승이란 재산상속의 개념이 아니라 가게의 이름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들에게 그 이름은 자부심이며 인생을 걸고 지켜야 할 약속이고 신용이다. 덕분에 100세 할머니의 소학교 시절 할아버지가 사주셨던 스시를 10살 증손자에게 사주며 그때 그 시절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고, 그 증손자의 증손자까지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흔히 일본의 힘은 문화적 콘텐츠에 있다고 한다. 콘텐츠는 스토리다. 라면 국물에서, 화과자에서, 작은 찻잔에서 수백 년의 이야기를 뽑아낼 수 있는 나라가 일본이고 그 원동력이 가업을 이어가는 사람들이다. 문화는 세대에서 세대로 넘겨주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이야기는 3대를 넘기기 힘들었다. 과연 앞으로의 이야기는 끊어지지 않고 이어질 수 있을까. 아쉬운 만큼 부러움이 크다.
김희성(일본어 통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