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신창호] MB대북정책, 극단이 극단을 낳고

입력 2013-01-24 18:52


5년 전 이맘때쯤 ‘이명박 인수위’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북한 정책을 여론의 도마에 올려놓고 “일방적으로 퍼주기만 하는 일은 더 이상 실효성이 없다”고 평가했다. 갖가지 형태의 대북 지원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멈추지 않는다는 게 비판의 요지였다.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의해 명명됐던 ‘햇볕정책’은 완전히 종적을 감췄다. 이전 10년 동안 진행됐던 대북 유화정책이 갑자기 용도폐기되고 ‘북한 봉쇄정책’이 새로운 입지를 다졌다. 이명박 정부는 철저하게 상호주의를 고집했다. 북한이 하나를 양보해야 우리도 하나를 주겠다는 식의 상호주의는 1970년대 박정희 군사정부가 채택한 노선이었다.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동구 공산정권의 붕괴, 독일 통일 같은 수많은 ‘결정적’ 변수가 생겼음에도 우리 정부가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쥐어본 적은 거의 없었던 듯하다. 철저하게 남한을 배제한 채 미국과의 양자협상에만 몰두하는 북한과 공화당·민주당 정권이 교체할 때마다 바뀌는 미국 행정부의 대북 노선 변화 사이에서 우리 정부는 최대 당사자이면서도 언제나 ‘부차적 대상국’ 취급을 받았다.

이명박 정부 5년도 이와 별 다르지 않았다. 다행인지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조지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을 답습하면서 한·미 간 불협화음은 나오지 않았다. 이 사이 북한은 어떻게 변했을까. 2002년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시작으로 본격화된 특유의 벼랑 끝 전술은 이제 북한의 기본 노선이 돼 버렸다. 철저하게 외부로부터 고립되자 자력갱생의 결기를 보이며 핵무기는 물론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까지 개발하고 있다.

요즘 청와대 외교안보 담당 참모들을 만나보면 “적어도 우리는 남북관계의 원칙을 세웠다고 자부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퍼주기만 10년 했으니 절대 안 주기 5년도 필요했다”고 소신을 펴는 참모도 있다. 핵 개발을 포기하지 않으면 아무런 보상이 없다는 국제사회의 냉정한 현실인식을 북한 정권이 제대로 느끼도록 해줬다는 의미다.

따뜻한 볕을 내려쬐어 더워서 옷을 벗도록 만들겠다는 햇볕정책과 혹한의 폭풍을 몰아쳐 꽁꽁 얼게 만들겠다는 봉쇄정책. 지금까지 우리 정부가 채택한 대북 정책의 두 극점이다. 지난 40년 동안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은 이 둘 사이를 오가며 갈지자 행보를 해왔다. 이전 정부의 정책이 다음 정부에 의해 지속적으로 계승되는 일도 드물었다.

1969년 집권한 독일의 좌파 총리 빌리 브란트는 서방 일변도 냉전체제에서 우파의 반대를 무릅쓰고 동방정책을 추구했다. 수많은 비판이 있었지만 독일 정부는 좌·우파가 교차 집권하면서도 이 정책을 버리지 않았다. 동방정책의 최대 수혜자는 공교롭게도 우파 헬무트 콜 총리였다. 1990년 동·서독이 통일됐기 때문이다.

다음달 말이면 들어서는 차기 ‘박근혜 정부’가 어떤 대북 정책 노선을 채택할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운신의 폭은 극히 좁다고 할 수 있다. 갑작스레 북한을 향해 문을 활짝 열기에는 이명박 정부가 채워놓은 잠금장치가 너무 견고해 보인다. 대외 상황도 최악이다. 그렇지만 현 정부의 노선을 또 다시 고집해선 안 될 것이다. 아무리 광풍이 불어도 북한 정권은 얼어붙는 대신 더욱더 모험주의에 빠진다. 하루 전 나온 북한 외무성의 ‘비핵화 포기’ 성명을 이명박 정부가 채택한 대북 봉쇄정책 탓으로 다 돌린다면 무리가 있을게다. 그래도 극단은 극단을 낳기 마련이라는 말이 떠오르긴 한다.

신창호 정치부 차장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