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사회적 ‘뻥’도 진화한다… ‘이웃집 사기꾼’

입력 2013-01-24 18:26


이웃집 사기꾼/스텐 티 키틀·크리스티안 제렌트/애플북스

‘희대(稀代)의 사기꾼’이라는 말이 있다. 세상에 드문 사기꾼이라는 뜻이다. 요즘은 이웃집도 믿지 못할 정도로 사기꾼이 판치는 흉흉한 세상이니 ‘희대’라는 말은 시대착오적이라고 할 것이다. 돌팔이 의사가 환자를 진료했다거나 조종사 자격증이 없는 사람이 파일럿 제복을 입고 여객기를 운행했다거나, 여기에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의 논문 표절 사건은 얼마나 빈발하는가. 이러한 현상 뒤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많은 ‘뻥’을 용인하고 있는가, 라는 반성적 질문이 숨어 있다.

독일 출신의 두 공동저자는 “이제 ‘뻥’은 우리 시대의 너무나 당연한 스킬처럼 번지고 있다”며 “여기엔 현대사회가 지나치게 사교력, 커뮤니케이션 능력, 유연성, 학습능력 등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독일의 금융투자가 위르겐 하르크센 사건은 사교력과 신분상승을 이용한 사기 행각의 대표적 예이다.

“위르겐 하르크센은 투자자와의 대화 도중 지나가는 말인 듯, 연소득 4억5000만 마르크에 대해 발부된 2억 마르크가 넘는 세금 고지서를 슬쩍 보여줌으로써 미심쩍어 하는 투자자들을 속였다. 하르크센의 뜬 구름 잡는 행각은 비교적 괜찮은 집안 출신의 아내를 만나게 되면서 그녀에게 성공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심어주려고 시작됐다.”(35쪽)

놀라운 것은 모든 사기 사건엔 완벽한 스토리텔링이 있으며, 사기꾼과 예술가는 둘 다 ‘환영(幻影)의 극장’ 안에서 연기를 한다는 점에서 서로 닮은꼴이라는 사실이다. “먼저 전체적인 틀, 즉 이야기를 하나 고안해낸 다음 한 단계씩 세부적인 것을 그려나간다. 그리고 자신이 꾸며낸 이야기의 기본 정보를 스스로 확고하게 믿을 때까지 되풀이하여 읊어댄다.”(38쪽)

다만 시인과 배우들은 자기 환상을 예술 분야 내에서 두루 맛볼 수 있는 행복한 패를 갖고 있는 반면, 사기꾼들은 재주는 있지만 불행하게도 인생 무대에 발을 내디딘 다음 범죄자가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사회적 ‘뻥’도 진화한다”며 이렇게 마침표를 찍는다. “뻥에 예리해진 눈길로 거울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누구를 보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과연 진실하며 진짜일까?”(289쪽) 류동수 옮김.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