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가을에 핀 꽃, 봄에 피었으면 벌써 시들었겠죠… '7번방의 선물' 주연 충무로의 대세남 류승룡

입력 2013-01-23 21:02


배우 류승룡(43)은 한 번 보면 쉽게 잊혀지지 않는 캐릭터다. 특별히 개성이 뚜렷한 얼굴은 아니지만 ‘빛나는 조연’으로 관객에게 오랫동안 인상을 남긴다. 2011년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 냉혈한 만주군 대장으로 700만명을 동원하고, 지난해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는 코믹한 카사노바로 460만명을 모았으며,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는 킹메이커로 1230만명을 모으는 데 기여했다.

영화 캐스팅 1순위로 떠오른 그가 ‘주연급 조연’이라는 수식어를 떼고 단독 주연을 꿰찼다. 23일 개봉한 영화 ‘7번방의 선물’(감독 이환경)에서 여섯 살 지능으로 멈춰버린 정신지체 장애인 용구 역을 맡았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용구는 집에 혼자 남겨진 딸밖에 모르는 ‘바보 아빠’다. 영화가 코미디에 그치지 않고 웃음과 눈물의 감동을 선사하는 것은 류승룡의 연기 덕분이다.

요즘 ‘충무로의 대세남’으로 불리는 그를 22일 서울 서교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무척 지쳐 보였다. “지난주부터 각종 매체 인터뷰만 48건 잡혀 있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감기 한 번 안 걸렸는데 지금 감기에 몸살까지 오는 것 같아요. 그래도 어떻게 해요. 최선을 다해야죠.” 개봉을 앞둔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 그는 “폭풍전야 같다.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고 했다.

그는 영화에서 말도 제대로 못하는 장애인이지만 천진난만한 어린애 같은 주인공을 실감나게 연기한다. “감독님이 저의 전작을 보시고는 강아지 눈을 닮았다고 생각하셨대요. 아이처럼 겁이 많고 호기심이 많은 눈이라는 거예요. 지금은 동태눈이긴 하지만…. 마흔을 넘긴 사람이 동심으로 돌아간다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그러나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려고 애썼죠.”

영화에는 오달수 박원상 김정태 정만식 정진영 박상민 등 쟁쟁한 배우들이 조연으로 나온다. 오랫동안 조연생활을 하다 주연을 맡은 류승룡으로선 부담이 될 법도 하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편했다”고 한다. “서로 연기를 잘 받쳐주면서 든든한 버팀목이 됐어요. 베스트 멤버 선수들이 모였으니 여러 가지 상황에서 순발력이 발휘되고 촬영 분위기도 좋았죠.”

1986년부터 연극배우로 활동하다 ‘난타’ 공연으로 미국 브로드웨이를 누비기도 한 류승룡은 2004년 ‘아는 여자’의 강도1 역할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아무리 작은 배역일망정 마다하지 않고 캐릭터를 철저하게 분석하는 등 최선을 다한 것이 오늘의 그를 있게 했다. 그는 자신을 “가을에 핀 꽃”으로 비유했다. 성격이 급해 봄에 피었으면 이미 시들어 말라 죽었을 것이란다.

“1961년 1월 18일 태어났어요! 제왕절개 엄마 아팠어, 내 머리 커서.” 인상이 험악한 죄수들에게 용구가 감옥에서 신고식을 하는 장면이다. 혀 짧은 대사를 하기 위해 류승룡은 실제 정신발달지체인과 나흘간 하루 4시간씩 붙어 지내며 어투와 표정, 심성과 태도 등을 배웠다. “내 자신을 완전히 버리고 내 안에 배역 캐릭터를 온전히 들여앉혀야 진짜 연기가 되는 거죠.”

코미디로 출발한 영화는 용구의 범행을 둘러싼 법정 공방으로 진행되다 딸과의 극적 해후가 이루어지는 판타지로 나아간다. 류승룡은 장르에 대해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가 있는 어른들을 위한 판타지 블랙코미디”라고 설명했다. 이어 관객들에게는 “기대치를 조금 낮추고 스토리 흐름에 마음과 몸을 편안하게 맡기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15세 관람가.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