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뛴다-종목별 최고령 선수들] (8·끝) 마장마술 전재식 (한국마사회)

입력 2013-01-23 19:52


“2014년 인천亞게임서 금메달 따야죠”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종합마술 은메달리스트 전재식(46·한국마사회)은 승마계에서 입지전적 인물로 꼽힌다. 현재 승마 국가대표팀의 맏형이자 한국마사회의 코치를 겸하고 있는 그는 성실과 노력만으로 지금의 위치에 올라왔다. 그리고 여전히 더 높은 정상을 향해 말과 함께 달리고 있다.

1980년 한국 체육계는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전 종목에 걸쳐 올림픽 꿈나무를 육성했다.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그가 경기도승마협회의 올림픽 꿈나무로 뽑힌 것이 그의 승마 인생의 시작이었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승마 종합마술 국가대표가 될 정도로 기량이 성장했지만 국제 대회와 인연이 없었다. 대학 1학년 때 86서울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에서 종합마술 예선 4차전까지 1등을 차지했으나 5차전에서 마체검사(말의 상태를 검사하는 것)를 통과하지 못해 실격됐다. 그리고 그를 대신해 순위 밖에 있던 선수가 뽑혔다. 당시 ‘보이지 않는 손’의 압력으로 그가 탈락했다는 것이 승마계 관계자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이후에도 그와 아시안게임의 악연은 계속됐다.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은 승마가 정식 종목에서 빠지는 바람에 기회를 놓쳤고 1994 히로시마아시안게임은 일본이 검역을 이유로 대여마(貸與馬)로 치르기로 함에 따라 선수들의 보이콧 결의로 출전하지 못했다. 이어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은 4명을 뽑는 장애물 대표 선발전에서 4위를 하고도 최종명단에서 빠졌다. 지방에서 승마교관을 하는 등 절치부심 끝에 그는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대표로 선발됐다. 하지만 당시 대표팀 선배인 김형칠 선수가 종합마술 경기중 낙마사고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자 그와 후배들은 남은 경기 출전을 모두 포기했다. 그리고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 출전한 그는 마침내 은메달을 따냈다.

“내년 인천아시안게임에 출전해 금메달을 꼭 따고 싶어요. 그러려면 올해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부터 잘 치러야죠.”

그는 광저우아시안게임 이후 종합마술에서 마장마술로 종목을 바꿨다. 장애물, 마장마술, 크로스컨트리를 합산하는 종합마술은 말의 다양한 기술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규정종목과 자유종목을 합산하는 마장마술은 고도의 섬세한 기술과 함께 예술성이 요구된다. 그는 종목을 바꾼지 2년도 안돼 지난해 전국체전에서 우승하는 등 국내 마장마술 최정상에 올라섰다. 이 과정에서 12년간 장애물말로 살았던 암말 ‘클래식걸’을 마장마술로 변신시키는 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마장마술은 섬세함이 요구되기 때문에 나이든 선수에게 더 맞는 것 같아요. 저는 앞으로도 10년 정도는 더 선수로 활동할 자신이 있습니다. 아직도 아침에 일어나면 말을 탈 생각에 가슴이 뜁니다.”

앞으로 그의 목표는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이다. 스포츠 가운데 유일하게 인간과 동물이 함께 하는 승마는 말의 능력이 경기력을 좌우한다. 전통적으로 승마가 강한 유럽권 국가나 오일 달러로 무장한 중동 국가 선수들이 수십억대 말을 타는 것과 달리 한국 선수들은 보통 2∼4억원대 말을 사용한다. 정부나 기업의 적극적인 지원 없이 승마가 성장할 수 없는 이유다.

“한국 승마는 지금까지 경기용 말을 수입해 왔는데요. 준마를 사는 것은 너무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앞으로는 국내에서 좋은 말을 키워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다행히 최근 마사회에서 말 산업을 육성할 계획을 가지고 있어서 준마도 육성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한국 선수들은 실력이 좋기 때문에 말만 갖춰진다면 올림픽에서도 당당히 승부할 수 있다고 봅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