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노믹스 때문에… 현대차·수출기업 엔진 식는다

입력 2013-01-23 19:15


‘아베노믹스’의 칼끝이 우리 기업을 본격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무차별 양적완화’의 최대 피해국은 한국이라는 분석이 현실화되고 있다. 세계 완성차 업계에서 3위권을 유지하던 현대·기아자동차의 시가총액이 ‘엔저(円低) 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일본 혼다에 밀려 4위로 내려앉았다. 원·엔 환율 하락으로 수출기업의 피해가 커지자 은행권은 서둘러 특별대출, 외환 컨설팅 등 지원사격에 나섰다.

금융투자업계는 현대차와 기아차의 시총이 22일 기준으로 각각 444억8000만 달러, 207억2100만 달러로 두 회사를 합쳐 652억100만 달러를 기록했다고 23일 밝혔다. 시총을 기준으로 세계 완성차 업계 1위인 도요타(1651억1700만 달러), 폭스바겐(1070억9600만 달러), 혼다(683억3200만 달러)에 이어 4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현대·기아차 시총은 지난해 3월 28일 이후 혼다에 줄곧 앞섰지만 10개월여 만인 지난 3일부터 추월당했다.

가장 큰 원인은 환율이다. 원화 강세 기조가 굳어진 지난해 11월 이후 현대·기아차 시총은 2개월여 만에 26억6700만 달러(3.9%)가 빠졌다. 반면 도요타와 혼다는 지난해 말부터 엔화 약세에 힘입어 수출 가격 경쟁력을 높였다. 같은 기간 시총을 각각 329억 달러(24.9%), 141억6900만 달러(26.2%) 키웠다.

문제는 엔화가 약세를 보일수록 우리 자동차 수출이 입는 상처가 깊어진다는 데 있다. 전문가들은 원·엔 환율과 국내 자동차의 수출 대수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파악한다. 이경우 울산발전연구원 박사는 “최근 10년간의 추이를 볼 때 엔화 가치가 1% 떨어지면 현대차의 수출량이 0.96%, 한 해 기준 1만대 감소한다”고 밝혔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KARI)도 “원·엔 환율이 10% 하락하면 한국 자동차 수출액이 12% 줄어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일본 기업의 맹렬한 반격을 예측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일본 제품이 가격 경쟁력을 갖게 되면서 한국 자동차 업계가 누리던 호황이 일본으로 이동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투자자문회사 피오니어의 안젤라 코베타 아시아 주식 부문 대표는 “한국 자동차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일본 업체 쪽에 투자를 늘렸다”고 말했다.

피해는 앞으로 더 확산될 전망이다. 투자은행(IB) 크레디트스위스의 산티탄 사티라타이 이코노미스트는 “원·엔 환율이 1%씩 떨어질 때마다 한국의 실질 수출 성장률은 1.1% 포인트씩 낮아질 것”이라고 추산했다. 그는 “일본의 인위적인 엔화 가치 하락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을 나라는 한국”이라고 단언했다.

국내 금융회사들은 일본 기업과 경쟁하는 국내 수출기업의 피해가 불가피해지자 자금지원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외환은행은 수출기업을 위해 운용하던 ‘네고 지원’ 펀드 규모를 늘리기로 했다. 지난해 9월부터 5억 달러 규모로 운영한 펀드를 10억 달러로 불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컨설팅 서비스를 유료에서 무료로 전환한 신한은행은 올해 일본 수출 기업들에 컨설팅을 집중할 방침이다. 기업은행은 본점 직원이 현장을 방문해 상담해주는 ‘환위험 관리 컨설팅’을 계획하고 있다.

이경원 양진영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