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생명나눔-인체 조직 기증] (중) 시급한 기증자 예우 조례 제정
입력 2013-01-23 22:09
지자체 8곳만 조례 시행… 기증 활성화 제도
‘고귀한 생명나눔’인 인체조직 기증 문화 확산을 위해 정부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기증 장려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지자체의 조례 제·개정 노력은 더디다. 또 조례를 만들어 놓고 관심과 홍보 부족으로 지역민들이 기증자나 희망 서약자 예우·지원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일부 지자체 조례는 기증자에게만 예우가 한정돼 있어 기증 활성화를 위해 유가족에게 확대 적용되도록 하는 조례 개정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244개 지자체 중 인체조직 기증 장려 조례 제정 8곳 불과=23일 한국인체조직기증지원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 244개 광역·기초 지자체 중 인체조직 기증 관련 조례를 제정해 시행 중인 곳은 경기도와 대구·대전·울산광역시와 남양주시, 대전 대덕구, 부산 남구, 울산 북구 등 8곳에 불과하다. 반면 장기 기증 활성화 조례를 갖고 있는 지자체는 60곳에 달한다.
인구 1000만명의 서울시와 25개 자치구에는 인체조직 기증 장려 조례가 단 한 건도 없다. 서울시와 중구·성동·중랑·서대문·양천·강서·영등포·송파구 등 8개 자치구는 장기 기증 장려 조례는 마련해 놓고 있다. 최근 중랑·강북구의회가 인체조직 기증 관련 조례 제정 움직임을 보였지만 아직 별다른 성과가 없는 상태다.
인체조직 기증 관련 조례를 만든 8개 지자체는 대부분 헌혈이나 장기 기증 장려 조례와 통합해 시행하고 있는 만큼, 이미 장기 기증 관련 조례를 갖고 있는 지자체들의 경우 조례 개정을 통해 인체조직 관련 부분을 추가하는 게 어렵지 않을 것이란 게 관련 단체의 시각이다.
지자체의 조례는 기증자 및 유가족 또는 기증 서약 등록자에게 해당 지자체가 운영하는 의료시설이나 공공시설 이용료를 면제 혹은 감면해 주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경기도 남양주시는 유일하게 인체조직 및 장기 기증자에게 100만원 한도 내에서 위로금을 지급하고 있다.
인체조직기증지원본부 박창일 이사장은 “인체조직 기증 국민 인식도 조사 결과 처음엔 기증에 부정적이었다가 유가족에게 혜택이 있으면 기증에 동의한다는 응답자가 38.8%나 됐다. 국민들이 서약자나 기증자 유가족들에 대한 실질적 예우를 중시하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조례안이 마련되면 자치단체장은 인체조직 기증 권장 활동을 적극 추진해 지역민들의 동참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또 시·군·구 보건소와 읍·면·동 주민자치센터 등에서 인체조직 기증 서약을 보다 쉽게 등록·접수할 수 있다. 박 이사장은 “많은 지자체에서 다양한 예우, 지원 방안을 조례로 제정하는 것이 국민 인식 전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속적 관심·홍보, 일부 지자체 ‘유가족 예우’ 조례 개정 필요=몇몇 지자체에서 어렵게 제정된 조례가 인체조직 기증을 활성화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구·울산·대전·경기도 등의 경우 의료기관 진료비와 공공시설 이용료 혜택 대상을 (인체조직 기증 및 장기) 기증자로 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장기 기증은 기증자 본인이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뇌사 혹은 사후에 이뤄지는 인체조직 기증은 기증자가 수혜자가 될 수 없다. 때문에 인체조직 기증 확인 증서를 발급받은 유가족들에게 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조례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초 기존 장기 기증 장려 조례에 인체조직 관련 내용을 포함시키는 조례 개정을 주도한 경기도 배수문 의원은 “현재 인체조직 기증 등록과 지원 등을 법제화한 법률이 없는 상태에서 조례 제개정에 한계가 있지만 필요성에는 공감한다”고 말했다. 2004년 제정된 인체조직안전법에는 인체조직 기증 희망자 등록 및 관리, 예우 및 지원 등에 대한 내용이 없다. 때문에 보건복지부는 최근 이 같은 내용을 반영한 인체조직안전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조례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2011년 3월 지자체 최초로 인체조직 기증 장려 조례를 만든 대전 대덕구 관계자는 “인체조직 기증 서약자나 기증자 유가족의 예우 시설 이용이 전무하다”면서 “홍보 부족이 가장 큰 이유지만 주민들이 보건소나 보건지소 등을 잘 이용하지 않는 측면도 있다”고 해명했다.
남양주시 관계자는 “조례 제정 이후 지금까지 150명이 인체조직 기증 희망 등록을 했지만 예우 시설 이용시 등록 카드를 활용하는 시민들은 극히 드물다”면서 “시정 신문이나 홈페이지, 반상회보 등을 통해 알리고 있지만 대다수가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남양주시는 올해 종교인, 의료인, 문화계 인사 등을 중심으로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적극 홍보에 나설 방침이다.
지자체의 지속적인 홍보 및 지원 활동이 이뤄지도록 행정안전부의 지자체 평가시 기증 관련 세부 항목을 포함시킬 필요성도 제기된다. 현재 평가항목인 ‘생명윤리 안전 인프라 확충’에 조례안 제정 여부와 지원 활동 내역 등을 명시하는 방법을 고려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