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바다에서 “희망 속으로”… 고성 겨울해변 드라이브
입력 2013-01-23 18:54
분단의 현장이자 동해안 최북단인 강원도 고성이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금강산 관광 재개에 기대를 모으고 있다. 관동팔경의 으뜸으로 꼽히는 청간정에서 화진포해변을 거쳐 통일전망대에 이르는 50㎞ 길이의 해안도로는 한적한 겨울바다를 벗해 드라이브 코스로 더욱 낭만적이다.
송강 정철과 우암 송시열이 극찬했던 청간정(淸澗亭)은 파도와 어우러지는 일출과 월출이 장엄한 풍경화를 그리는 정자. 소나무 숲의 오솔길을 따라 절벽 위에 자리한 누각에 올라서면 동해의 수평선과 설악산의 능선이 장엄하게 펼쳐진다. 청간정에는 ‘설악과 동해가 서로 조화를 이루는 옛 청간정에 오르니 과연 관동지방에서는 빼어난 일품의 경치로구나’라는 내용의 최규하 전 대통령이 쓴 한시도 붙어 있다.
청간정에서 북쪽으로 2㎞ 정도 떨어진 천학정(天鶴亭)은 고성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절경. 기암괴석의 해안절벽 위에 자리한 천학정에 오르면 남북으로 청간정과 능파대가 보인다. 이른 아침 천학정의 지붕 아래에서 솟은 태양은 한 폭의 그림. 천학정을 품은 야산에는 수령이 1500년이나 된다는 거대한 노송 한 그루가 있다.
천학정에서 7번 국도를 타고 철새도래지로 유명한 송지호를 지나면 옵바위 해돋이로 유명한 공현진항이 나온다. 옵바위 해돋이는 동해 추암이나 강릉 정동진 등 강원도의 해돋이 명소와 견줘 손색이 없지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게 매력. 인파로 북적이는 명소를 피해 호젓하게 사색을 즐기며 해돋이를 감상할 수 있다.
옵바위 해돋이는 한겨울이 제철이다. 이맘때면 공현진 방파제와 나란히 붙은 옵바위의 소담스런 빈 공간 사이로 해가 뜬다. 해돋이의 광경은 숙연하면서도 장관이다. 해가 뜨기 전부터 앞바다는 여명으로 붉게 물든다. 이윽고 옵바위가 토해낸 듯 바위 틈 사이로 해가 떠오르면 갈매기와 함께 항구로 돌아오는 고깃배들이 태양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한다.
이제 명태잡이 배들은 사라졌지만 거진항은 이른 새벽 그물을 걷으러 나갔던 어선들이 속속 귀항하면서 아연 생기를 띤다. 화톳불을 피워놓고 그물에 걸린 생선을 분리하는 아낙들의 투박한 손길에서 겨울바다의 싱그러운 향기가 짙게 배어난다. 검푸른 바다 밑에서 떼 지어 찬물을 호흡하던 명태가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의 안주가 되고 시가 되던 시절은 흘러간 옛날. 지구온난화로 10여 년 전부터 한류성 어종인 명태는 대부분 자취를 감추고 지금은 러시아 근해에서 잡은 원양 명태가 어물전 앞에서 얼고 녹고를 거듭한다.
거진항에서 화진포를 거쳐 대진항까지 이어지는 약 5㎞의 해안도로는 겨울바다의 낭만과 쓸쓸함이 교차하는 드라이브 명소.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준서가 사랑하는 은서를 등에 업고 해변을 걷던 화진포는 호수와 바다가 어우러진 명소. 오랜 세월 조개껍질과 바위가 부서져 만들어진 화진포 해변은 눈이 부시도록 하얗다. 화진포 앞바다를 홀로 지키는 작은 섬은 금구도. 거북 형상의 금구도는 고구려 광개토왕의 왕릉이라는 주장이 제기돼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화진포 옆 송림 속에 위치해 ‘화진포의 성’으로 불리는 김일성별장은 독일 건축가 H. 베버가 1938년 건립해 예배당으로 이용하던 건물.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으로 광복 이후 북한 땅이 되면서 김정숙과 김정일 형제가 묵고 간 적이 있어 김일성별장으로 불린다.
한적한 해안도로는 다시 북쪽으로 달려 동해안 최북단에 위치한 대진항에서 걸음을 멈춘다. 털게와 문어로 유명한 대진항은 아담한 항구지만 사철 어항 특유의 활기가 넘쳐난다. 바닷가 동산에 우뚝 솟은 31m 높이의 대진등대는 우리나라 최북단의 등대로 해돋이가 장엄하다.
명파해수욕장을 지나 북으로 달리면 통일전망대 조금 못 미쳐 동해선 제진역이 나온다. 기적마저 사라진 제진역은 2007년 5월 17일에 금강산역을 출발한 동해선 북측 열차가 시험운행을 위해 군사분계선을 넘어 정차했던 역사의 현장. 현내면의 민통선 내에 위치한 DMZ박물관은 DMZ의 아픈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
고성 해안선의 종점은 휴전선과 금강산이 한눈에 보이는 해발 70m 고지의 통일전망대. 빨갛게 녹슨 동해선 철도와 금강산 관광객을 실어 나르던 남북연결 도로가 금강산 관광 중단으로 이제는 갈 수 없는 북녘 땅을 향해 뻗어 있다. 굳게 닫힌 철문이 다시 열릴 그날을 기다리며….
고성=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