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밈없는 스타의 자녀들, 위기의 MBC ‘일밤’ 구할까
입력 2013-01-23 21:48
MBC TV 예능 프로그램 ‘일밤’의 과거는 화려했다. 수많은 스타와 숱한 인기 코너를 배출했다. 프로그램을 거쳐 간 코너명만 열거해도 우리나라 방송가 예능의 역사가 짐작될 정도다. ‘배워봅시다’ ‘몰래카메라’ ‘이휘재의 인생극장’ ‘이경규가 간다’ ‘러브하우스’ ‘브레인 서바이버’….
하지만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일밤’의 위상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2011년 상반기 ‘나는 가수다(나가수) 시즌 1’이 반짝 인기를 끌긴 했지만, 당시에도 동시간대 시청률 정상 고지를 밟진 못했다. 도대체 ‘일밤’은 무엇이 잘못된 걸까. 이 프로그램의 히트작 기근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끝이 안 보이는 부진의 터널=‘일밤’은 1988년 11월 27일 ‘일요일 일요일 밤에’라는 간판을 내걸고 첫 방송됐다. 지금의 제목으로 개명한 건 2011년 3월부터다. 이 프로그램은 25년 역사에 걸맞게 수많은 코너를 히트시켰고 예능의 트렌드를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밤’이 인기를 끌면서 ‘유머 1번지’(KBS2) 같은 콩트 코미디는 시들해지고 버라이어티 쇼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일밤’은 고전의 길을 걸었다. 특히 2007년 ‘1박2일’을 내세운 ‘해피선데이’(KBS2), 이듬해 ‘패밀리가 떴다’를 전면에 포진시킨 ‘일요일이 좋다’(SBS)에 밀리며 궁지로 내몰렸다. MBC는 수차례 대대적인 개편을 단행하며 승부수를 띄웠지만 번번이 허사였다.
대표적인 경우가 2009년 12월 이뤄진 개편이었다. MBC는 제작진과 출연진을 대폭 물갈이하며 ‘단비’ ‘우리 아버지’ 등 공익적 성격이 강한 코너들을 선보였다. 하지만 시청률 부진으로 이 코너들은 조기 퇴출됐고, 이어진 후속 코너들 역시 줄줄이 단명했다.
23일 시청률 조사기관 닐슨 코리아에 따르면 이 시기부터 현재까지 3년 1개월 동안 ‘일밤’이 내보냈거나 방송 중인 코너는 무려 16개에 달한다. 평균 시청률을 보면 ‘나가수 시즌 1’이 13.1%를 기록했을 뿐 대부분 코너는 7% 수준에도 못 미쳤다. 반면 타방송사 경쟁 프로그램인 ‘해피선데이’ ‘일요일이 좋다’는 각각 ‘1박2일’ ‘런닝맨’을 중심으로 수년째 시청률 20%를 넘나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밤’ 장기 부진의 가장 큰 이유로 제작진이 ‘무한도전’(MBC) ‘1박2일’ 등 이른바 ‘리얼 버라이어티’로 넘어가던 예능의 흐름을 읽지 못했다는 점을 꼽는다. 대중문화평론가 김교석씨는 “원래 해오던 방향을 계속 고집하려 했던 점이 실패 원인”이라며 “물론 ‘리얼 버라이어티’라고 부를 수 있는 코너들도 선보이긴 했지만 방송사가 이 코너들이 안착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아이들이 ‘일밤’을 구할까=하지만 최근 ‘일밤’에서는 긍정적인 변화가 감지된다. 아빠와 아이들의 오지 여행기를 담아내는 신규 코너 ‘아빠! 어디 가?’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 지난 6일 첫 방송돼 지난 20일 3회분까지 전파를 탄 이 코너에 대한 시청자 반응은 호평 일색이다. 홈페이지 시청자 게시판에는 “진정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대박날 것 같다”는 글이 줄을 잇는다.
시청률도 매주 상승세를 타고 있다. 1회에서 7.3%를 기록한 시청률은 3회에서 8.5%로 상승했다. 2009년 이후 약 3년 만에 경쟁 코너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20일 시청률 8.4%)을 0.1% 포인트 차로 제쳤다.
이 코너가 좋은 반응을 얻는 건 어린이 출연자들의 꾸밈없는 모습이 어필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에 출연하는 배우 성동일(46) 등 스타 5명의 자녀들 연령대는 만 7∼9세. 아이들은 천진난만한 매력으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특히 가수 윤민수(33)의 아들 후(8)군은 어른 못지않은 먹성과 축구 스타 송종국(34)의 딸 지아(7)양을 향한 거리낌 없는 구애 행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엄마와의 관계에 견줬을 때 상대적으로 소원한 부자 혹은 부녀의 모습을 리얼하게 담아내고, 나아가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는 점도 이 코너의 특징이다.
TV 평론가 김선영씨는 “아이들 사이에 다양한 관계가 형성되고, 아이들의 캐릭터가 자리 잡으면 지금보다 더 큰 재미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제작진이 ‘지난번에 본 거랑 똑같네’라는 반응이 나오지 않게 다양한 그림이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해간다면 성장 가능성이 있는 코너”라고 평가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