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차인홍 (3) 칠흑같은 삶 속에서 만난 하나님과 바이올린
입력 2013-01-23 18:33
처음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 바이올린과 만난 곳이 성세재활원이다.
지금도 새벽예배 때면 재활원에서 예배드렸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하지만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못했던 시절 재활원의 신앙교육은 즐겁기만 한 일이 아니었다.
특히 무더운 여름 부흥회에 참석하고 매일 새벽예배를 드리고 성경말씀을 공부하는 것은 마치 어려운 과목을 한 시간 더 수업 받는 느낌이었다. 나중에야 하나님께 기도하고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특권인 줄 알게 됐지만 그때는 단순히 힘든 일로 느껴졌다.
내 인생이 칠흑 같은 어둠에서 환한 빛 가운데로 나오게 된 것은 모두 하나님과의 만남 덕분이었는데도 한동안 그 은혜를 깨닫지 못했었다. 그때는 막연히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 정도로 느꼈지만 재활원에서 내가 겪은 일들은 분명 하나님이 계획하시지 않았다면 이뤄지기 어려운 것이었다.
내가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게 된 것도 그런 일들 중 하나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부끄러워했음에도 이상하게 노래 부를 수 있는 기회는 자주 주어졌다. 처음에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노래를 부르면서도 내가 노래를 부르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힘들었다. 하지만 재활원 선생님과 친구들이 “너 노래 좀 하는데”라고 칭찬을 해줄수록 자신감이 생겼다.
남들 앞에 서는 것 자체가 왠지 어색했던 내가 큰소리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다니…. 특히 재활원 설립자인 고 남시균 이사장께서 칭찬해주셨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그분은 내 노래에 기뻐하시면서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내가 진짜 노래에 소질이 있구나’라는 자신감이 생겼을 때쯤 나는 재활원을 대표하는 ‘가수’가 돼 있었다. 재활원에서 합창단원으로 활동했고, 이후 대전의 한 방송국에서 개최한 어린이날 노래자랑에서 1등을 하기도 했다. 또 일본 오이타현 벳푸에 있는 장애인 단체인 ‘태양의 집’에서 성세재활원 합창단을 초청해 일본에서 견문을 넓힐 수 있었다. 재활원에서 친구들과 배불리 먹을 궁리만 하던 나는 새로운 문화를 접한 뒤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노래 부르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내 몸에 들어온 음악에 대한 애착이 커졌을 때 내 인생을 바꾸는 사건이 벌어졌다. 내가 바이올린과 처음 만나게 된 것이다.
따뜻한 봄볕이 좋았던 날 나는 재활원 앞마당에서 친구들과 뒹굴며 놀고 있었다. 그때 바이올리니스트 강민자 선생님을 처음 봤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강 선생님은 유성온천에 오셨다가 돌아가던 길에 화창한 봄 날씨를 만끽하기 위해 택시에서 내리셨다고 한다. 그는 온천 인근의 만년교 다리를 산책하듯 건넜다. 둑 옆에 있는 재활원을 우연히 본 뒤 그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셨고 마당에서 서로 몸을 부비며 놀고 있는 우리들과 마주쳤다.
“제가 여기 아이들한테 바이올린을 가르쳐줄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어떤 뜻으로 그분을 재활원에 보내주셨을까. 서울의 유명 대학 출신 바이올리니스트가 시골의 재활학교에서 바이올린 레슨을 해주다니…. 바이올린이 뭔지도 모를 뿐 아니라 가정 형편도 어렵고 몸이 불편한 어린이들이 바이올린을 배운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무엇보다 연주와 강의로 바쁘신 강 선생님이 어떤 대가도 받지 않고 레슨을 해준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재활원의 추억을 떠올리면 강 선생님이 연주하신 그 한 음 한 음이 머릿속에서 그대로 울리곤 한다. 무엇보다 강 선생님의 첫 수업을 잊을 수 없다.
“이렇게 연주하면 소리가 나지? 이 악기를 바이올린이라고 불러요.”
정리=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