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노석철] 미혼모·아기 처지부터 살피길

입력 2013-01-23 18:36


그 아이는 졸린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눈망울이 맑고 피부가 하얀 아이가 너무 예뻐서 가슴이 시렸다. 버려졌다는 사실도 모르는 아이는 늘어지게 하품도 했다. ‘이렇게 예쁜데 엄마는 나를 왜 버렸느냐’는 무언의 항변처럼 느껴졌다. 차라리 예쁘게 태어나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그렇게 아프게 하지 않았을 텐데…. 아이는 태어난 지 100일이 됐지만 그때까지 이름도 없었다.

아이를 버린 비정한 엄마는 도대체 누구일까. 슬픔과 분노가 한꺼번에 치밀어 올랐다. 티 없이 깨끗한 아이 얼굴을 그대로 신문에 보여주고 싶었다. 버린 엄마와 어른들이 죄책감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아이의 인권 때문에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해야 했다. 지난 9일자 국민일보 10면에 보도된 민준(가명)이 얘기다. 입양특례법 탓에 버려진 아이들 20명의 사진도 앞서 실었다.

갓난아기 버리는 참담한 현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적잖은 오해도 받았다. ‘선진국 수준에 맞게 입양특례법을 개정해 놨는데 왜 흔들려 하느냐’ ‘국민일보가 무슨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항의가 모처에서 들어왔다.

답답했다. 아이들이 버려지는 현실에서 무슨 의도가 있을 수 있겠나. 물론 개정 입양특례법은 좋은 법이다. 과거엔 장애아동 지원금을 노리거나 앵벌이를 시키기 위해 입양을 악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 입양부모의 자격을 국가가 심사해 입양아가 학대당하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가 법에 담겨 있다. 출생신고 의무화는 ‘아동의 성명권과 국적취득권, 부모에게 양육받을 권리’ 등이 담긴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바탕을 뒀다.

법 취지대로 된다면 아이들이 새 가정에서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미혼모들은 출생신고 자체에 지레 겁을 먹고 아이를 버리고 있다. 단순히 법 때문만이 아니라 미혼모를 손가락질하는 풍조, 아기를 혼자 키우기 힘든 여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부모가 아이를 버리는 건 씻을 수 없는 죄악이다. 낳았으면 죽든 살든 부모가 키워야 하는 게 우리의 정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미혼모들에게 혼자 아기를 키우도록 할 여건이 되는가.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24세 이하 미혼양육모가 받는 월 지원금은 15만∼30만원뿐이다. 미혼모는 여러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 선정도 어렵다고 한다. 더구나 25세 이상 미혼모는 최대 17만원으로 줄어든다. 그런 악조건에서도 아이를 포기하지 않는 엄마들이 늘어나는 건 그나마 희망적이다. 이 돈을 지원받은 미혼모가 2010년 1222가구, 2011년 1620가구였다. 미혼모 지원 확대가 유기 아동을 줄이는 1차 해법이라는 걸 보여주는 좋은 징후다.

법이 한 발 앞서가 생긴 부작용

이처럼 미혼모 지원은 형편없는데 법이 한 발 앞서가니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다. 게다가 미혼모들이 출생신고가 두려워 입양기관 상담조차 기피하니 잠시라도 법을 보완해 여유를 두자는 얘기다. 법원의 심사 인력도 늘려 입양 병목현상도 해소해야 한다. 입양이 늦어지면 아이들은 영영 고아로 자라야 할지 모른다.

일각에선 아동 유기를 조장한다며 베이비 박스를 없애자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시기상조다. 여전히 아기를 버리려는 미혼모는 많은데 베이비 박스를 없애버리면 아이들의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올 들어 서울 신림동 주사랑공동체교회에는 벌써 12명의 아기가 버려졌다. 좋은 취지의 법이 잠시 겪는 시행착오라기엔 버려지는 아이가 너무 많다. ‘고아수출국’이란 오명도 부끄럽지만 ‘아이를 버리는 나라’라는 말은 더 창피한 것 아닌가. 다행히 국회에서 법을 보완한다니 미혼모와 아기 처지에서 지혜를 모아보자.

노석철 사회부장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