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를 넘어 함께하는 우리로 (4)] 결혼이민여성 초은씨 “빨리 한국말 배워 한국사람 되고 싶었는데…”

입력 2013-01-23 18:02


“스무 살이나 많은 남편이었지만 한국에서 잘 살아보고 싶어 왔어요. 열심히 한국말을 배웠어요. 빨리 한국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캄보디아 여성 초은(가명)씨의 현실은 달랐다. 남편은 1주일에 3∼4일 술을 마셨고 술을 마신 후에는 늘 손이나 발로 머리를 툭툭 치거나 때렸다. 새벽까지 무릎을 꿇게 하고 때려 꼬박 밤을 새운 적도 있었다. 사건이 있던 그날 밤에도 남편은 자신의 친구들 앞에서 그녀에게 심한 모멸감을 주는 행동과 말을 계속했다. 귀가하는 택시에서 초은씨는 계속 울었다.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밖에서 사온 술을 마신 후 그녀를 또 때렸다. 자신의 친구들 앞에서 고분고분하게 굴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얼굴을 때리고 급기야는 임신 중인 그녀의 배를 차기도 했다. 초은씨는 아기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을 잃었다. 깨어보니 손에는 부엌칼이 들려져 있었고 남편의 옆구리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구속됐고 남편은 사건 발생 며칠 후 사망했다.

그녀의 삶에는 너무나 큰 변화가 찾아왔다. 낯선 이국땅에서 10년 구형에 4년 선고를 받고 청주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시작했다. 그해 늦여름엔 남편의 폭력에 맞서가면서까지 지킨 딸 유나의 엄마가 되었다. 2009년 1월 30일 사건 직후 수감되면서부터 대구지역 이주여성인권센터와 대구YWCA는 구명운동을 폈다. 특히 YWCA는 ‘가정폭력에 의한 정당방위’라고 주장하며 적극적인 구명운동을 펼쳤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는 살아야 하는 이유와 인생의 꿈을 찾았다. 초은씨는 가정폭력 피해자에 의한 정당방위가 인정돼 2010년 8월 15일 특별사면대상자로 출감된 후 캄보디아로 돌아갔다.

결혼이민여성에 대한 가정폭력 사건은 남편의 언어폭력, 구타를 넘어서서 그 수준이 죽음까지 이를 정도로 심각하다. 2010년 여성가족부 실태조사에 의하면 결혼이민여성의 47.3%가 가정폭력 피해를 경험했다. 초은씨의 구명운동에 앞장섰던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홈페이지에는 ‘폭력으로 사망한 이주여성 리스트’가 있다. 대부분 남편의 몰이해에서 오는 분노와 폭력에 무자비하게 죽음으로 몰리게 된 경우다. 한국어가 어눌한 결혼이민여성은 남편과 의사소통 자체가 문제다. 시댁식구들은 결혼이민여성을 감시와 비하의 대상으로 본다. 대구YWCA 김세형 차장은 “한두 해 살면서 한국말을 습득해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할지라도 문화적 차이로 인한 불화는 여전하다”며 “또한 남편과 아내의 결혼에 대한 기대치가 달라 갈등의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남편들은 못사는 나라의 사람을 많은 돈을 주고 사왔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아 아내를 상품으로 보기도 한다. 따라서 이들 여성에게는 가부장적이나 폭력적으로 대해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가정폭력을 쉽게 유발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캄보디아로 되돌아간 초은씨는 아기를 키울 수 있는 상황도, 친정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YWCA는 결혼이민여성의 경제적 자립과 여성 지도력 개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2011년부터 그녀에게 4년간 대학 장학금과 생활비를 지원하고 있다.

“남편과의 만남과 생활 속에서 전 늘 거부당했고 무시당했어요. 거의 매일 맞았고요. 그래서 내가 누구인지도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대구YWCA의 간사님과 회장님은 제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저를 귀하게 여겨 주셨어요. 제가 꿈을 이루고 싶어 할 때 가장 가까이에서 지지해 주시고 지원해 주셨답니다.”

이주영(한국 YWCA 연합회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