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리 대북제재 강화 결의] ‘절묘한 타협’… 美, 독자제재 근거 얻고-中, 제재 표현수위 낮춰

입력 2013-01-24 00:34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결의 2087호는 외양으로는 제재의 대상과 범위를 늘리고 방법도 신설한 것이 눈에 띈다. 저인망식으로 북한을 조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용을 뜯어보면 대북 압박 수위조절에 치중해 온 중국과 양자 또는 독자 제재를 통해 북한을 압박하려는 미국의 타협의 결과물이다.

◇미·중 타협의 산물=결의안 채택을 주도한 미국은 조선우주공간기술위원회 등 기관 6곳과 백창호 위성통제센터장 등 개인 4명에 대한 추가 제재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중국의 부정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강제성이 없는 ‘의장성명’이 아니라 한 단계 높은 ‘결의’를 이끌어낸 점은 미국의 외교 성과다. 수전 라이스 유엔주재 미 대사는 “북한이 국제사회와 대결하면 ‘갈수록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함을 명확히 보여준 것”이라며 “원하는 목표를 달성했다“고 말했다.

중국으로서도 나쁠 게 없는 결의다. 비록 미국의 강력한 요구로 새 제재 결의안을 통과시켰지만 전반적으로 결의에 담긴 표현은 기존 2006년 1718호나 2009년 1874호와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1874호의 경우 ‘촉구한다(urge)’는 표현이 수없이 사용됐으나 이번엔 ‘요구한다(demand)’ 등 강제성이 떨어지는 표현이 많아 실효성이 낮아진다. 유엔의 한 외교관은 익명을 전제로 로이터통신에 “이번 결의에 따른 북한 제재가 새롭다는 것은 과장”이라며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

결의안 통과로 미국에는 대북 제재 강화라는 당근을 주고, 북한에도 로켓 발사 도발에 대한 경고를 주는 효과를 거둔 것이다. 또 표현 수위는 낮춰 북한을 달랠 수 있는 계기도 마련했다. 미·중 간 타협의 산물인 셈이다.

하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제재 자체의 실효성을 떠나 혈맹인 중국이 결의안에 찬성했다는 점에서 일격을 당한 측면이 있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AFP통신에 “제재 자체는 손목 때리기 놀이 수준에 불과하다”면서도 “중국이 안보리 이사국의 압박에 양보한 데 북한은 속이 뒤집힐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독자 제재 근거 마련=안보리 결의는 핵과 미사일 개발에 사용될 우려가 있는 민수용품에 대한 수출입 통제가 포함됐다. 또 관련 금융활동 감시도 모든 민간 금융활동으로 확대됐다. 기존 군수용품에 한해 수출입 통제가 이뤄지고 이에 따른 금융활동 감시가 모든 민간 수출입활동과 금융활동 감시로 대폭 확대된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이 조항을 활용해 한국 일본 등과 공조해 양자 또는 독자 제재를 강화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워싱턴 소식통은 “최근 이란 결의나 과거 대북 결의 채택 때마다 미국은 거의 빠짐없이 더 강화된 독자 제재를 시행했다”고 말했다.

특히 미국은 제재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고강도의 방코델타아시아(BDA)식 내지 이란식 제재를 예고한 바 있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도 이 조항이 어떻게 운영되느냐에 따라 비약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조항이라고 보고 있다.

또 10만 달러나 100만 달러 단위의 뭉칫돈을 수하물이나 기내 반입물품 등을 통해 수송하는 것도 차단하는 등 지금까지 대북 제재를 하면서 확인된 위반 사항을 결의에 담아 지금까지 드러난 약점을 보완한 것도 눈에 띈다. 북한이 추가로 미사일이나 핵 실험을 할 경우 ‘중대한 조치(significant action)’를 취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지만 정작 중대한 조치가 무엇인지 명쾌한 설명을 내놓고 있지 않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