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 칼럼] 증세 없이 복지확대 가능할까

입력 2013-01-22 19:04


“減稅시대 끝났음을 고백하고 국민에게 협력 구하는 설득의 리더십 보여야”

연말정산 시즌이다. 소득공제신고 연말정산은 원천징수당한 세금을 일부 돌려받을 수 있어 근로자들은 13월의 보너스로 부른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들어 정부가 소비 진작 차원에서 근로소득세 원천징수를 덜했던 탓에 올해는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이 별로 많지 않을 모양이다.

납세의무를 잘 알면서도 원천징수당한 세금은 한 푼이라도 더 돌려받고 싶고 내야 할 세금은 조금이라도 덜 내고 싶은 것이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마음이다. 어느 나라에서든 탈세가 벌어지고 과세 대상에서 누락된 지하경제가 존재하는 이유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도 그 점에 주목한 듯하다. 복지 확대를 주장하면서도 증세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고 필요한 재원은 정부예산 조율과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하면 충분하다고 밝혀왔기 때문이다. 장삼이사들로서야 세금부담은 그대론데 복지가 늘어나니 쌍수를 들어 환영할 터다.

그런데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우선 박 당선인의 복지 확대 공약에 필요한 재원과 전문가들의 예측규모가 적잖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박 당선인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향후 5년 동안 필요재원을 134조5000억원으로 보고 있으나 일각에서는 105조원 이상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견해차가 워낙 커서 어느 쪽이 옳은지조차 분간하기 어렵다.

다음으로 필요재원 규모가 박 당선인 주장대로라고 해도 세부조달 방안이 문제로 부각된다. 박 당선인은 정부의 비효율성을 개선해 재원의 60%를 조달하고, 세수 확대를 통해 나머지 40%를 조달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세수 확대란 금융소득에 대한 과세 강화(4조5000억원), 비과세·감면축소 및 정상화(15조원), 지하경제 양성화를 포함한 세원확보(28조5000억원) 등으로 호락호락하지 않다.

세수 확대가 예상대로 이뤄지더라도 정부의 비효율성 개선(86조6000억원), 즉 복지행정·공공부문 개혁, 예산 절감 및 세출구조조정 문제 역시 간단치 않다. 불필요한 분야에 대한 예산절감 논의는 과거 정부 출범 때마다 단골로 등장했다가 사라지고 말았을 정도다. 복지행정, 복지전달체계 개혁 역시 논의만 빈번했었다.

정부의 비효율성을 방치하자는 게 아니다. 해소가 마땅하나 난제인 탓에 성공을 자신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뜻이다. 행여 새로운 복지 재원조달을 위해 기존 복지서비스를 줄이거나 없애야 한다면 이는 그야말로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꼴이다.

복지 확대를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 또한 아니다. 복지수요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경제성장이 일상적으로 이뤄지던 시절에는 복지가 다소 미흡해도 일자리가 있고 일하려는 마음만 있다면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었기에 복지타령을 하지 않아도 좋았다. 하지만 성장은 정체되고 일자리는 얻기 어려운 시절에 접어들면서 나와 내 가족의 곤궁함을 감싸줄 정부의 힘, 나라의 부양능력을 갈급하게 된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 바로 그렇다.

빠른 속도의 인구구조변동 등 상황이 너무 긴박하기에 정부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 폭증하는 복지재원을 감안할 때 정부는 오랜 감세(減稅)시대가 이제 종료됐다고 국민들 앞에 솔직하게 고백하고 이 문제와 관련해 국민의 협력을 구하는 설득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한국은 국세와 지방세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인 조세부담률이 19%로 매우 낮은 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25%에 훨씬 못 미친다. 그간 우리의 복지수준이 낮았던 것은 복지재원인 조세부담률이 낮은 까닭이다. ‘높은 세금-높은 복지’의 복지대국 북유럽이 그 증거다.

다만 단기간에 조세부담률을 끌어올리기는 어렵다. 중장기 계획을 세워 매년 1% 포인트씩 올려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만약 이 계획이 성공한다면 이는 차기 박근혜 정부의 최대 치적이 될 것이다. 증세 없이 장기적인 복지 확대는 불가능하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