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고승욱] 특정업무경비
입력 2013-01-22 19:04
판공비(辦公費)의 사전적 의미는 ‘공무를 처리하는 데 드는 비용’이다. 공무원에게 정해진 봉급 외에 각종 경비에 충당하라고 지급하는 돈을 말한다. 지위가 높아질수록 판공비가 많아지고, 어디에 써야 한다고 정해진 것도 아니어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돈의 대명사가 됐다.
지금 우리나라 어느 법에도 판공비라는 용어를 찾을 수 없다. 비자금으로 유용되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은 게 원인이다. ‘판공비=공직자 비리’라고 인식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1993년 각종 규정에 판공비 항목을 없애 업무추진비 등으로 대체하고 관리를 강화했다.
공무원에게 각종 비용을 지급하는 기준은 기획재정부 행정예규인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지침’에 담겨 있다.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가재정법 44조에 근거해 매년 1월 말 모든 정부기관에 이 지침을 보낸다. 여기에는 예산조기집행 여부, 예비비 사용 방식 등 큰 틀의 예산집행 방향뿐 아니라 숙직비, 특근비, 여비 등을 얼마나 지급하고 어떻게 정산하는지에 대한 방법이 담겨 있다.
판공비로 알려진 업무추진비, 특수활동비, 직무수행경비, 특정업무경비 등도 출발점은 바로 이 지침이다. 특수활동비는 ‘기밀유지가 요구되는 정보·사건 수사, 기타 이에 준하는 국정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라고 정의돼 있다. 업무추진비는 사업추진비, 관서업무비로 세분해 적용범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직무수행경비는 직책수행경비, 특정업무경비, 교수보직경비로 나눴고 1급은 얼마, 2급은 얼마라는 식으로 액수까지 열거했다. ‘기관의 수사·감사·예산·조사 등 특정업무 수행에 소요되는 경비’인 특정업무경비 항목에는 ‘업무추진비나 축·조의금 용도로 사용할 수 없다’ ‘개인별로 정액을 지급하는 경우 연간 월평균 30만원을 초과할 수 없다’ 등의 지침이 붙어 있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는 특정업무경비가 가장 큰 쟁점이었다. 야당 의원들은 “이 후보자가 매월 300만∼500만원씩 6년 동안 3억2000여만원을 특정업무경비로 받아 신용카드 대금결제, 개인 보험료 지불 등에 사용했다”고 질타했다. 이 후보자는 강하게 부인했지만 근거자료는 제시하지 못했다.
판공비는 아직도 눈먼 돈으로 불린다. 공무를 빙자해 개인 일에 세금을 쓰는 구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고위공직자 먼저 규정을 지켜 잘못된 관행을 끊어내야 한다. ‘생계형 권력주의자’라는 말은 그래서 더 짜증이 난다.
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