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부양, 중앙銀 동참론 뜨겁고… 역할 전환 논란 커지는 지구촌
입력 2013-01-22 19:26
각국 중앙은행 독립성 폐기 운명
경제학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할 판이다. ‘중앙은행의 제1 목표는 물가안정이고, 이를 위해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원칙이 ‘뉴 노멀’ 시대에 폐기될 운명에 처했다. 중앙은행도 물가보다는 경제를 살리기 위한 정부정책에 동참해야 한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득세하고 있다.
◇물가보다 재정=일본은행은 22일 경기부양을 위해 인위적으로 물가를 끌어올리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형식은 정부와 공동성명이었지만 독립성을 포기하겠다는 항복선언과 다름없다. 한국은행 김중수 총재도 지난 14일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새 정부의 정책과 최적의 조화를 찾겠다”며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은 같이 갈 때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경기부양대책에 필요한 돈을 공급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적극 나서겠다는 의미다.
독일 분데스방크의 옌스 바이트만 총재가 21일(현지시간) 프랑크푸르트 증시 신년 연설에서 “경제 위기 타개는 중앙은행의 핵심적 역할이 아니다”며 “중앙은행 역할을 (물가관리로 다시) 좁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비판했지만,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강조되던 시대는 지나갔다”고 평가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이미 2010년 그리스·스페인·이탈리아 등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위기 국가의 은행과 정부에 유로화를 사실상 무제한 공급하기로 했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도 재정난에 처한 정부의 채권 매입 한도를 계속 늘리고 있다.
◇중앙은행 역할 전환=지난해 11월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은 새 총재로 40대 후반의 마크 카니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를 지명했다. 카니 총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통화 공급에 앞장선 인물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영란은행의 이 결정은 경제학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HSBC의 수석이코노미스트 스티브 킹은 지난 11일 FT 기고문에서 “더 이상 통화정책에 정치적 중립 지대는 없다”고 지적했다. 중앙은행이 통화 공급에 나선 것은 급한 불을 끄기 위한 임시대책이 아니라 앞으로도 이어질 중앙은행의 새로운 역할이라는 뜻이다. FT 칼럼니스트 길리언 테트는 “중앙은행의 독립은 종착역이 아니라 중간역”이라며 지금은 돈을 빌려서라도 경제를 살려야 하는 상황인 만큼 “중앙은행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일 때”라고 주장했다.
애초부터 중앙은행 독립은 신화였단 평가도 나온다. 사실 1, 2차 세계대전 직후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경험한 독일 외에 중앙은행에 물가안정 임무를 전담시키며 철저한 독립을 보장한 사례는 드물다. 브레턴우즈 체제가 붕괴한 1970년대 이후 세계 경제는 어느 정도 인플레이션을 용인해 왔고, 금융자산이 세계적으로 증가한 90년대부터 통화가치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중앙은행 독립이라는 신화가 만들어졌다는 것.
문제는 지금이 세계화 시대라는 점이다. 한 나라의 통화 팽창은 곧바로 다른 나라의 환율 하락(화폐가치 상승)으로 이어진다. 국제수지의 불균형은 통화 팽창을 확산시켜 환율전쟁을 일으키고 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