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법 거부권 행사] MB “어떻게 버스와 같을 수 있나”… 여론 업고 강수
입력 2013-01-22 19:32
이명박 대통령은 5년 집권기간 동안 단 한번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지난해 9월 자신과 부인 김윤옥 여사, 아들 시형씨 등이 얽혀든 ‘내곡동 사저’ 특검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돼 넘어왔을 때도 그대로 수용했다. 당시 청와대와 정부는 “야당이 특검 임명권을 가진 법안은 부당하기 이를 데 없다”며 거부권 행사를 설득했지만 이 대통령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본인 문제로 입법부가 통과시킨 법률을 비토(veto·반대)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 이 대통령이 22일 유독 택시법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이 법안이 대표적인 ‘포퓰리즘’ 입법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지난 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을 때부터 이 대통령은 “어떻게 값비싼 요금 체계를 가진 택시가 전체 운송 수요의 80% 이상을 담당하는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수단이냐”고 지적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택시에 엄청난 정부 보조금이 돌아가면 화물노조는 가만히 있겠느냐. 그러다 보면 정부 재정 건전성은 하루아침에 무너진다”는 견해도 피력한 바 있다. 다른 운송수단과의 형평성도 고려하지 않은 채 연간 1조9000억원의 혈세를 퍼부을 순 없다는 것이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대선 공약에 택시법이 포함돼 있지 않은 만큼 차기 정부와 충돌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도 작용한 듯하다. 따라서 이 대통령이 임기 말이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정부를 운용하겠다”는 소신에 따라 ‘거부권 카드’를 꺼냈다는 해석이다.
1948년 제헌국회 이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경우는 이번을 포함해 모두 72번이다. 1948년 9월 30일 이승만 대통령이 양곡매입법안에 거부권을 사용한 게 처음이다.
국회가 여소야대였던 노무현 정부에서는 6번이나 거부권이 행사됐다.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대북송금 특검법 공포안과 측근비리 의혹 특검법안에 대한 정부 재의요구안에 사인했다.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고건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있을 때에도 사면법 개정안과 거창사건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특별조치법이 거부됐다. 이밖에도 노 전 대통령은 일제 강제동원 희생자 지원법안과 학교용지부담금 환급법안을 국회에 재의를 요구했다. 법안은 대부분 국회가 재의결을 해 그대로 시행됐다.
역시 여소야대였던 13대 국회에서도 노태우 전 대통령이 국정감사조사법, 해직공직자 복직보상특별조치법, 지방자치법 개정안, 노동쟁의조정법 개정안, 노동조합법 개정안, 국민의료보험법안 등 야당 입법 법률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