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근미] 공정한 선생님
입력 2013-01-22 20:32
중학교를 마친 조카가 우리 집에서 이틀간 묵고 갔다. 초등학교를 외국에서 다닌 조카는 어쩔 수 없이 학비가 좀 비싼 국제중학교에 다녔다.
학교가 위치한 포항 얘기를 하다가 포스코가 들어선 배경을 설명하자 조카는 모든 게 신기한 모양이었다. 불과 몇 십 년 전에 포항이든 울산이든 공장 하나 없는 허허벌판이었다는 게 상상이 안 간다는 표정이었다.
이념 교육을 시키는 교사들이 있다기에 그 학교 사정을 물었더니 대선 정국에서도 정치적 발언을 한 교사는 없었다고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생각난 듯 미국인 교사 얘기를 했다. 미국에서 대선 레이스가 한창일 때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그 미국인 교사에게 버락 오바마와 밋 롬니 중 누구를 지지하느냐고 물어본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 교사가 “내가 누구를 지지하는지 밝혀서 너희들의 판단이 한쪽으로 쏠리게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더니 “다만 두 사람이 어떤 정책을 주장하는지 알려주겠다”며 두 후보의 공약사항을 설명해줬다고 한다. 조카는 “그 선생님 대단하지 않아요? 우리가 미국 사람도 아니고 투표할 것도 아닌데, 알려주지 않더라고요”라며 선생님이 공정해서 좋았다고 말했다.
포항과 가까운 지역의 한 여교사가 지난 대선을 앞두고 학생들 앞에서 한쪽 후보를 비방한 일이 있었다. 그 교실에 있던 학생이 그 모습을 몰래 찍은 영상이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 앙칼진 목소리로 한쪽 후보를 깎아내리며 지지층까지 힐난한 여교사와 두 후보의 공약을 비교분석해주는 미국인 교사,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교사란 학생들에게 물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줘야 할 사람들이다. 학생들이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줘야 할 교사가 자신의 생각을 주입하는 건 월권에다 직권남용이다.
그런 교사가 많지 않겠지만 내 아이가 하필 몰지각한 교육을 받게 된다면 피해를 100% 입게 되니 문제다.
비단 학생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매일 뭔가를 주입당하며 산다. ‘이래야 한다, 이것이 맞다’고 주장하는 것을 넘어서서 ‘저건 안 된다, 저건 틀렸다’고 단정하는 소리까지 넘쳐나 머리가 아프다. 자기 확신이 지나치게 과해서 남의 생각까지 침범하는 일은 이제는 제발 그만뒀으면 한다. 특히 무한한 상상력으로 삶의 품을 넓혀가야 할 어린 제자들에게 낡은 사고를 주입하는 건 범죄나 다름없는 일이다.
이근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