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배병우] 미국 ‘아시아 중시 정책’의 대가

입력 2013-01-22 19:01


지난 연말 이후 ‘재정절벽(fiscal cliff)’ 문제를 둘러싼 미국 공화당과 백악관 사이의 벼랑 끝 대치를 여러 차례 기사화했다. 하지만 한국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둔감했다. 우리 금융시장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겠지만 결국은 미국 내 문제라고 기자는 생각했다.

그러나 미국의 재정위기가 한국에 미칠 파장이 예상보다 클 수 있다는 것을 요즘들어 깨닫고 있다. 미국 정부가 큰 의미를 부여해 온 기념행사까지 예산이 줄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약과다.

한국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부분은 국방예산의 대폭적인 삭감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10년간 약 5000억 달러 규모의 국방예산을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더욱이 2월말로 다가온 국가부채 한도 협상이 여의치 않을 경우 추가로 5000억 달러를 더 줄여야 한다. 미국의 정부 재정지출 삭감분의 50%가량이 국방예산이다.

우선 올해 시한이 다가온 한·미 간 방위비 분담협정이 발등의 불이 됐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방위비 분담금을 얼마로 정할지를 위한 협상에서 오바마 행정부는 재정 위기를 이유로 한국의 분담비율을 현재 42%에서 50%까지 올려줄 것을 요구한다고 한다.

42%(8125억원)인 분담률이 50%로 8% 포인트 증가하면 한국은 매년 2000억원 가량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미군의 한국 주둔 비용으로 우리가 매년 부담하는 비용이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서게 되는 것이다.

미국산 무기 판매를 우리 정부에 집요하게 압박할 가능성도 높다. 이는 록히드마틴, 보잉 등 방산업체를 지역구에 둔 미 의회 의원들의 이해와도 맞아떨어지는 사안이다. 이미 미국의 국가부채가 16조4000억 달러를 넘어선 점을 볼 때 국방예산 감축은 오바마 행정부가 지속적으로 추진할 중장기 정책기조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여기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해 야심차게 천명한 새로운 외교·안보전략 ‘아시아 중시(Pivot to Asia)’ 정책의 귀추에 관심이 쏠린다. 예산과 인력 등 실질적인 자원의 뒷받침 없이 정치·외교적 수사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미국 내에서도 나오는 실정이다. 여기에다 이란 핵 문제와 중동·북아프리카 정세 불안까지 겹쳐 ‘아시아로의 외교축 재균형(rebalancing)’이 가능하겠느냐는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미 의회를 오래 담당해 온 한인 외교소식통은 기자에게 “미국 정부가 정말 돈이 없다”며 “이런 재정 사정이라면 아시아 쪽에 신무기를 배치하고 자원 을 배분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다. 미국의 부담은 최소화한 채 동아시아와 동남아 동맹국들이 ‘중국 포위전선’에 ‘동원’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미국의 아시아 중시정책의 불확실성은 중국의 경제·군사력에 전면적으로 노출된 한국에는 더 큰 위험으로 다가온다. 한국으로서는 연간 늘어나는 방위비 분담금도 문제지만 ‘중국 포위전선의 첨병’이라는 인상을 중국에 줄 경우 장기적으로 국익에 손상이 가는 것이 더 큰 걱정이다.

이런 점에서 박근혜 정부가 악화된 대 중국 관계 복원에 무게를 두는 것은 현명한 일이다. 나아가 새 정부는 미국이 대 중국 관계에서 ‘경쟁과 배제’만을 강조할 때 이에 대해 충고할 필요도 있다. 미·중의 긴밀히 얽힌 경제 안보적 이해관계를 고려할 때 미국이 동아시아 국가와 동맹을 튼튼히 맺는 것과 함께 중국과의 신뢰 구축에 힘쓰는 것이 미국에게도 이익이 된다고 말이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