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간의 문학적 여정과 우정… 평론가, 작가와 ‘특별했던 신뢰’를 추억하다

입력 2013-01-21 18:44


22일은 작가 박완서(1931∼2011)의 2주기이다. 생전의 박완서와 10여 차례 동서양을 넘나들며 문학기행을 했던 문학평론가 김윤식(77·서울대 명예교수)씨가 고인을 추모하는 ‘내가 읽은 박완서’(문학동네)를 냈다. “유학생 부부의 안내로 맨 먼저 간 곳이 루쉰의 옛집. 마당엔 그가 손수 심었다는 라일락이 있었다. 이어서 우리는 ‘열하일기’에서 박지원이 서양 귀신엔 흥미 없으나 풍금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는 베이징 남당(南堂) 가톨릭 성당을 찾았다.”(323쪽)

박완서에 대한 다수의 작품론은 물론, 저서에 수록된 36장의 사진은 고인이 지상에서 내쉬었던 숨결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서울대가 관악캠퍼스로 옮겨온 1975년. 박완서는 당시 첫 작품집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에 붙일 원고 청탁을 위해 김윤식을 찾았던 것인데, 박씨의 맏딸 호원숙은 김윤식의 대학 제자이기도 했다. “씨의 맏따님을 매개로 하여 관악산 내 연구실로 찾아온 자줏빛 한복 차림의 중년 여인은 ‘카메라와 워커’의 작가이기에 앞서 한 기품 있는 가정주부였소. 왜냐면 씨는 내게 아무것도 묻거나 따지지 않았소. 그냥 만남이었소. 그리고 이러한 만남이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소. 그것은 인격체로서의 존재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현상으로서의 존재도 아니었소.”(9쪽)

이후 김윤식은 박완서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작가에 앞서 가정주부이자 한 여인으로서의 박완서를 의식할 수밖에 없었으니, ‘작품 제일주의’를 고집했던 김윤식에게 예외의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내가 박완서의 소설을 오래도록 읽고 또 썼다고는 하나, 그 글들이 과연 소설 해설 및 평가에 육박했는지 자신이 없는 이유가 여기에서 왔소. 그것의 어떠함은, 내가 말할 것이 못 되오. 새삼 사람들의 안목에 맡길 수밖에 없는 성질의 것이 아닐까 싶소.”(10쪽)

게다가 두 사람의 문학적 여정은 1991년 독일 훔볼트대학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작가 루이제 린저를 함께 만난 것을 시작으로, 프라하(1992)∼상하이(1994)∼베이징(1994)∼카트만두(1999)∼앙코르와트(2001)∼모스크바(2004) 등으로 이어졌으니 이들은 작가와 평론가라는 관계를 뛰어넘어 전혀 다른 양상을 띠게 된다. 2006년 5월, 박완서의 서울대 명예박사 학위 수여식에 참석한 김윤식은 이렇게 털어놓는다. “대학본부 건물 계단에 겹겹이 서서 사진을 박았소. 끼어들어 사진을 박았소. 귀가하면서 이런 행동에 스스로 만족했소. 명예가족이란 말이 퍼뜩 떠올랐기 때문이오.”(219쪽) 신뢰와 연륜을 바탕으로 한 두 사람의 관계는 우리 문단의 아름다운 사표로 남기에 충분하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