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조용래] 円 이야기

입력 2013-01-21 18:42

요즈음 서울 명동을 찾는 일본인들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엔화가치 하락(엔저·円低)으로 방한 일본인 관광객이 감소한 탓이다. 지난해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직후 한·일 양국관계가 급격하게 얼어붙었을 때도 끄떡없었던 일본인 관광객 유입추세가 엔저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지난달 일본인 입국자수는 21만여명으로 넉 달 전보다 3분의 2로 줄었다. 엔저 외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100엔당 원·엔 환율은 작년 9월 21일 1428.46원에서 어제 1171.36원으로 넉 달 만에 18.0%나 급락했다. 엔화의 실질구매력이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엔은 사실 지난 4년간 고평가돼온 측면이 없지 않다. 엔화가치는 2008년 9월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안전자산으로 부상하면서 그 직전의 1달러당 100엔대의 수준에서 빠르게 반등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2011년 3·11 동일본대지진 후 지진피해 복구차원의 엔화수요 증가를 예상한 투기자본이 가세해 엔고를 더욱 부추겼다.

2011년 10월 31일엔 전후 최고치인 1달러당 75.35엔까지 솟구쳤다. 순전히 엔고 탓만은 아니지만 일본은 그해 31년 만에 처음으로 무역적자를 기록한다. 2조6000억엔이던 적자폭은 지난해 6조엔으로 확대됐다. 일본은행이 지난해 엔화 약세를 유도하기 시작한 배경이다.

문제는 지난날 26일 출범한 아베(安倍) 정권이 지나친 양적완화 및 엔저정책을 펴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경제를 살리겠다는 취지는 이해 못할 바 아니나 이웃나라에 피해를 전가하는 노골적인 통화정책은 옳지 않다. 세계 최대의 채권국인 일본은 해외이자·배당소득 덕분에 소득수지는 무역수지 적자를 메우고 남을 정도라서 경상수지는 여전히 흑자다. 엔고의 근거는 아직 충분하다는 얘기다.

역사적으로도 그렇다. 메이지(明治)정부가 1871년 엔을 화폐의 기본단위로 했을 때 1엔의 가치는 금화 1달러(순금 1500㎎)와 같았다. 다만 1897년 금본위제 도입 때 1엔의 가치기준은 순금 750㎎으로 조정됐고, 이후 금본위제의 폐기·재도입이 반복됐지만 공식 환율체계는 1945년 패전까지 대략 ‘1달러=2엔’을 유지했다.

패전 후 엔화가치는 실세가 반영된다. 군비조달을 위한 통화남발 탓에 엔화가치는 ‘1달러=360엔’으로 추락했고 1973년 변동환율제로 전환될 때까지 그 비율은 고정됐었다. 이후 지난 40년 동안 엔화의 역사는 다소 오르내림은 있었지만 엔고 지향적이다. 지금의 무리한 엔저정책도 그와 같은 큰 흐름을 거스르지는 못할 것이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