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그리스도인, 섬김·나눔의 사람들

입력 2013-01-21 18:09


마태복음 25장 40절

우리 대한예수교 장로회 통합총회는 올해 ‘그리스도인, 작은이들의 벗’이라는 주제 아래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세계경제 속에서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지만 성장의 그늘 아래 신음하는 사람도 여전히 많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3000달러에 달하고, 국민총생산도 비약적으로 늘어났지만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는 OECD 국가들 중 가장 빠르게 심화되고 있습니다.

최근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레미제라블’이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훔친 빵 한 조각 때문에 19년 동안 감옥생활을 치르며 분노와 증오의 주인공이었던 장발장이 사랑과 용서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면서 벌어지는 일들이 영화의 주된 내용입니다. 레미제라블 작품이 세상에 나온 지 15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는 혁명이 일어날 만큼 증오가 가득한 세상에서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는 장발장의 모습을 보며 큰 위로를 받기 때문입니다. 용서와 사랑, 섬김과 나눔은 변하지 않는 역사의 진리이며 우리가 실천해야 할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마 25:40)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언제나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은 관심을 받았지만 작은 자들은 소외의 대상이었습니다. 성경은 지극히 작은 자를 주리고 목마른 자, 헐벗고 병든 자, 옥에 갇힌 자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약자가 된 이유가 개인적인 것일 수도 있고, 사회구조적인 문제일 수도 있지만 성경은 그 이유를 따져 묻기보다 먼저 그들을 도와줘야 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자들에게 물을 주고, 병든 자들은 돌봐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지극히 작은 자들을 찾아가 그들과 함께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주위에 있는 작은이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바로 경제적, 사회적 약자들인 것입니다. 절대적 빈곤층과 다음세대,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다문화가정 그리고 북한 동포들이 우리가 함께해야 할 작은 자들입니다. 가난하고 병든 노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이 땅에는 언제나 지극히 작은 자들이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기 전까지 이 땅에 가난과 고통은 끊이지 않습니다. 가난과 고통이 없는 하나님 나라는 우리 모두가 작은이들의 벗이 되어 예수님처럼 살아갈 때 임할 것입니다.

경제를 살리고 국방을 튼튼히 하는 일은 나라와 민족을 지키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과 지극히 작은 자를 생각하는 섬김과 나눔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섬김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눔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생명을 살리고 국가를 세우는 일의 근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에 죄악이 들어올 수 없고, 이웃을 보살피는 민족이 신뢰를 잃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명령하신 섬김과 나눔의 진리가 곧 국가의 경쟁력이고 나라 사랑의 비결입니다. 올 한 해, 우리 모두가 지극히 작은 자들의 벗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는 복된 한 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동엽 예장통합 부총회장(서울 목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