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약 수정 논의 쐐기 박을 일 아니다
입력 2013-01-20 19:43
재원규모·조달방안 확정한 뒤 필요하면 속히 조정해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공약 수정론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뒤에도 공약 이행에 필요한 재원 규모나 조달 방법을 둘러싸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박 당선인은 지난 17∼18일 새누리당 지역 선대위원장들과 잇따라 만난 자리에서 “대선 때 공약한 것을 지금 와서 된다, 안된다고 얘기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국민과의 약속을 잘 지켜야 정부에 대한 신뢰가 쌓일 것”이라는 취지의 언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 등에서 재원 조달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공약이행 속도조절론 등을 제기하고 있는 데 대해 어려움이 있더라도 공약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의지가 중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당선인 진영이 대선공약집에서 제시했던 공약 이행에 필요한 재원은 134조5000억원 규모다. 당선인측은 예산 절감과 세출 구조조정 등으로 71조원을, 복지행정 개혁을 통해 10조6000억원을 조달하고 비과세와 세금감면의 축소 등 세제 개편과 기타 재정수입 증대로 53조원을 마련하겠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경제단체나 전문가 사이에서는 복지공약 재원이 지나치게 적게 산정됐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6월 한국경제연구원이 새누리당의 총선 공약 이행에 드는 비용을 270조원으로 추산했는데 대선 과정에서 기초노령연금 등 새 공약이 추가돼 재원 소요가 더 늘어났다는 논리다. 따라서 공약 이행을 위해 소득세나 법인세의 과표구간 조정이나 세율 인상 등 증세가 필요 없다는 당선인 측 견해와 달리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내용이다.
박 당선인이 공약 수정론에 쐐기를 박은 것은 타당한 측면이 있다. 아무리 선거전이 전쟁을 방불케 한다 하더라도 공약은 국민과의 약속인데 이를 손바닥 뒤집듯 해서는 정치가 신뢰받을 수 없다. 새 정부 출범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선거공약을 재조정하는 게 상례가 되면 무책임한 공약이 남발될 소지가 있고 정치는 후진성을 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산 착오든 방향설정이 잘못됐든 공약의 이행 가능성이 회의적이라면 한시바삐 고치는 게 옳다. 공약의 충실한 이행도 중요하지만 잘못이 있다면 속히 바로잡아 국정의 부담을 더는 것도 국민에 대한 도리다. 잘못이 분명한데도 인정하지 않거나 수정하지 않는다면 소통 부재가 될 수 있다.
다만 현재로서는 공약 이행에 소요될 재원에 대한 보다 정확한 추계치를 산정하고 재원조달 방법도 정밀하게 모색하는 게 우선이다. 불명확한 추정을 놓고 논란만 빚는 것은 소모적이며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기획재정부가 조만간 재원 대책을 인수위에 보고할 예정이다. 현실을 정확히 반영한 소요재원 규모를 파악하고 당선인의 새로운 국정철학을 존중한 재원 대책을 마련하는 게 우선돼야 한다. 그런 다음 이를 토대로 충분한 논의와 고민을 하는 게 올바른 순서다. 부득이 공약 우선순위나 재원 마련방안을 조정해야 한다면 그 이유를 국민 앞에 낱낱이 밝히고 새로운 공감대를 형성하는 절차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