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태원준] 구호는 늘 진실한가

입력 2013-01-20 19:44


할아버지는 8남매를 두셨다. 내 아버지는 3남5녀의 다섯째다. 아버지 형제는 모두 1960∼70년대 결혼했고 할아버지는 손주를 17명 얻으셨다. 큰아버지는 아들과 딸, 아버지는 아들 둘, 둘째 고모는 딸 둘…. 8남매는 딸 셋인 큰고모를 제외하고 모두 둘만 낳았다.

이렇게 된 데는 큰아버지 영향이 컸다. 정부 시책을 솔선해야 했던 공무원이셨고, 당시 박정희 정부는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며 산아제한정책을 폈다. 가임여성 1인당 합계출산율이 6.1명(1961년)이던 나라에서 이 구호는 내 사촌형제 수를 17명으로 막아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열심히 설명하시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한다. 세계 인구가 얼마나 빨리 늘고 있는지, 이대로 가면 땅덩어리가 작은 우리나라는 어떻게 되는지. 60년대 가족계획 표어 중엔 이런 것도 있었다.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 ‘둘만 낳아 잘 길러 1000불 소득 이룩하자.’

이토록 절박했던 정책의 운명은 우리가 아는 대로다. 할아버지의 8남매를 비롯해 국민 대다수가 ‘아이를 덜 낳아야 잘 산다’고 믿었지만 30년 만에 저출산·고령화 역풍을 맞았다. 1996년 김영삼 정부는 출산장려정책으로 180도 선회했다.

지난주 국무회의에서 ‘보건의료 특별조치법’ 시행령 개정안이 통과됐다. 농어촌 보건소에 가족계획 담당자를 두는 조항이 삭제됐다. 96년 이후 사문화된 부분을 정리한 것이다. 박정희 정부의 산아제한정책은 박근혜 정부 출범을 코앞에 두고 완전히 폐기됐다.

이렇게 됐다고 60년대 초 시작된 산아제한정책을 비난하는 건 결과론이다. 먹을 게 부족했던 시절이다. 오죽했으면 먹는 입 줄이자는 정책이 나왔을까. 30년 뒤를 내다보는 정책, 말처럼 쉽지 않다. 문제는 30년이 지나도록 변화를 눈치 채지 못한 데 있다. 가족계획 표어는 80년대 들어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으로 오히려 강화됐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다른 구호는 ‘수출만이 살 길이다’였다. 박 대통령은 65년 연두교서에서 “수출 아니면 죽음”이라던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의 2차 세계대전 직후 발언을 인용했다. 역시 절박한 구호였고, 초등학교 선생님은 또 열심히 설명하셨다. 우리나라 자원이 얼마나 부족한지, 왜 우리는 가공무역에 매달려야 하는지.

50년이 다 돼가지만 이 구호는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오히려 자유무역협정(FTA)을 확대하며 수출에 더 매달렸다. 그런데, 과연 아직도 수출만이 살 길일까? 80년대 산아제한의 역풍을 감지하지 못했듯이 또 그렇게 세월을 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90년대 이후 한국경제의 위기는 모두 외부요인 때문이었다. 아시아 외환위기(97년), 미국발 금융위기(2008년), 유럽발 재정위기(2011년)에 수출 의존도가 큰 우리 경제는 휘청거렸다. 200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갈등은 모두 양극화에 근본 원인이 있다. 수출을 위한 대기업 위주 경제구조가 신자유주의 기류와 맞물려 사회 구석구석에 ‘격차’를 심었다.

어쩌면 진즉 ‘내수(內需)만이 살 길이다’를 외쳤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이명박 정부의 내수 진작책이었던 ‘부자 감세’는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부(富)의 온기는 흘러내리지 않았고 서민들의 소비 여력은 나아짐이 없다. 이제라도 복지라는 이름의 펌프를 돌려봐야 한다. 차기 정부가 해보려는 복지공약이 현실성 논쟁에 부닥치는 현실은 그래서 불편하다.

태원준 정치부 차장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