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김태만] 권력의 적, 부정부패
입력 2013-01-20 19:01
18차 당 대회를 전후로 중국의 언론매체에서 권력형 부정부패 척결에 관한 소식이 눈에 띄게 늘었다. 시진핑의 취임 일성 역시 ‘반부패’였던 점을 상기하면 그다지 특이할 것도 없지만, 향후 중국의 향방을 가늠케 하는 좋은 잣대이다. 어떤 권력이건 새로 시작할 때 이전 권력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면서 새 권력의 색깔에 맞는 기강을 세우는 것이 동서고금의 기본 패턴이다. 전 권력의 부정부패 척결을 통해 전 권력과 차별화하는 동시에 새 권력의 위엄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30여년을 달려온 중국 개혁 개방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시경(詩經)시대부터 존재했던 탐관오리는 공산주의 혁명 과정에서도 죽지 않고 오늘날 더욱 흥성하고 있는 듯하다. 중국 인민들이 중국의 미래와 관련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빈부격차’와 더불어 ‘부정부패’를 적시했다. 권력형 부정부패가 국민의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일 것이다. 부패와의 전쟁에서 이기지 않고서는 민심을 얻을 수 없다는 기본도리를 중국의 새 지도부가 모를 리 없다. 때문에 고위공직자 재산공개와 이들의 비리조사를 병행하는 등 기민하게 부패척결에 나서고 있다.
시진핑의 반부패정책을 지휘하고 있는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 왕치산을 보면 장쩌민 당시 ‘철혈 재상’이라 불렸던 주룽지 총리가 연상된다. 그를 중용했던 사람이 주룽지여서가 아니라 주룽지만큼이나 부패와의 전쟁에 매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룽지는 총리 재직 당시 강력한 개혁을 추동하면서 “내 것을 포함해 관 100개를 준비하라”고 할 만큼 부정부패 척결에 앞장섰다. 그래서일까. 중국 인민들은 “장쩌민은 잊었어도 주룽지는 잊지 않는다”고 말하곤 한다.
전국시대 진(秦)나라에 상앙(商?)이라는 법가(法家) 사상가가 있었다. 세제와 법제를 강화함으로써 귀족 권력을 약화시키는 등 강력한 법치를 실현했다. 귀족이건 서민이건 법 앞에 공평한 사회는 결과적으로 부강한 나라를 만들었다. 이것이 진시황이라는 절대 왕권의 탄생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지위고하를 불문한 엄정한 법 집행은 많은 정적을 낳았고, 마침내 그는 거열형(車裂刑)에 처해졌다. 그런 비운을 알았던 것일까. 오페라로 상연된 ‘상앙’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주룽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만약 언론에 비친 중국의 부정부패가 모두 사실이라 한다면 국가존폐마저 위협받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공무원들 사이에 만연한 부정부패는 개인에서부터 조직, 기관은 물론 지방과 중앙정부에까지 광범위하게 만연하고 있다고 한다. 취업, 승진, 진학 등 각종 이권과 관련된 뇌물의 고리는 금품제공에서 성상납에 이르기까지 천태만상이고, 부패 간부의 95%가 축첩을 하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정부의 예산집행이나 재물잔고까지도 불투명하다보니 군대의 탱크마저 해체되어 고철로 팔릴 정도라 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의 투명도는 전 세계 최하위다. 베이징대학 교수를 비롯한 참여적 지식인들이 ‘개혁공동인식제안서’라는 공개서한을 발표하는가 하면 변호사 등 1000여명의 전문가들이 공산당 중앙위원들의 ‘재산공개촉구’ 서명운동을 벌인 것은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부패 없는 청렴사회는 미래로 가는 첫걸음이다. 하지만 부패 척결이 권력의 변화나 변화된 권력의 상징적 이미지 조작을 위한 이벤트로 끝날 때는 또 다른 반발과 저항을 가져올 수 있다. 지도자의 강력한 의지도 중요하겠지만 부패척결이나 방지를 위한 항구적인 원칙과 시스템 구축이 관건이다. 그럼에도 근본적으로 법이 법대로 공정하게 집행되게 하는 것은 법 자체보다 법을 운용하는 법관의 공정한 양식과 법의 공정한 운용을 감시 감독하는 ‘깨어 있는 시민들의 힘’임은 만고의 진리다. 한국이라고 어디 중국과 다르랴.
김태만 해양대 교수 동아시아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