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를 즐기세요… 국가가 챙겨 드립니다” 국회 발의 된 ‘국민여가활성화 기본법안’

입력 2013-01-20 18:29


한국인은 OECD 국가 중 가장 긴 노동시간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짧은 여가시간도 소극적이고 정적인 여가활동으로 소진, 낮은 여가 만족도를 보이고 있다. 한마디로 일상이 행복하지 않다는 얘기다. 빠른 인구 고령화에 따라 늘어나는 노인들의 여가활동에도 국가는 소극적이다. 입시지옥에 시달리는 청소년여가는 이미 실종된 지 오래다. 이제 국민들의 행복을 위해 여가활동에도 국가가 관심을 기울여야 될 때가 됐다. 선진국 국가의 책무인 것이다.

국민 여가활동도 국가의 책무임을 규정한 ‘국민여가활성화 기본법안(이하 여가기본법)’이 만들어져 최근 국회에 발의됐다. 학계와 정부, 정치권이 7년여의 노력 끝에 만든 여가기본법안은 ‘여가활동과 휴식은 시간낭비’라는 기존 관념에서 벗어나 ‘좋은 휴식=재창조’라는 인식이 법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된 것이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국가적 차원에서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한 다양한 정책과 프로그램을 전개하고 있는 실정이다.

◇주요 내용=18개 조항으로 이뤄진 여가기본법은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국민 행복추구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법이다. 기본법상 ‘여가’란 자유시간 동안 행하는 강제되지 않은 활동을 말한다. 여가기본법은 ‘국민들의 여가환경 조성을 위해 국가와 지자체는 관련 정책을 수립·시행한다’고 규정, 국민들의 여가선용도 국가와 지자체의 책무임을 규정했다. 즉, 국민이 일과 여가를 조화롭게 하고 여가환경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이와 함께 여가기본법은 국민들이 적절한 수준의 여가를 보장받아야 할 권리가 있음을 아울러 천명했다.

기본법은 또 여가문화 활성화를 위한 기본계획 수립 및 중요사항을 심의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소속하에 여가위원회를 두도록 했다. 25명이내의 위원으로 구성되는 여가위원회는 각부의 차관들로 구성돼 각부에 흩어진 여가관련 정책을 통합 심의·의결하게 된다.

여가기본법은 이와 함께 국가와 지자체는 여가시설과 공간을 확충토록 법제화하는 한편 여가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여가프로그램을 개발·보급토록 규정했다. 또 여가활성화를 위해 여가교육을 학교 및 관련 시설 등에서 실시토록 하고 장애인, 노인, 저소득층, 다문화가정 등 사회적 약자의 여가활동 증진을 위해 힘쓰도록 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용호성 문화여가정책과장은 “여가기본법이 통과된 뒤 후속 진흥법이 뒷받침해야 기본법의 취지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하지만 국민들의 여가활동 보장을 국가와 지자체의 책무라고 선언한 상징적 의미는 매우 크다”고 말했다. 이 법안은 최근 새누리당 남경필 의원 대표발의로 국회에 상정됐다.

◇제정 배경=여가기본법의 제정은 한국인이 가장 일을 많이 하면서 행복하지 않다는데서 출발했다. 또 21세기가 요구하는 창의적 인재를 만들기 위해서는 휴식과 놀이가 전제돼야 하고, 여가산업이 새로운 경제성장 동력이 될 것이란 전망 또한 그 배경이 됐다.

한국 노동자의 1인당 연간노동시간(2010년)은 2193시간으로 OECD 평균 1794시간보다 399시간 많다. 하루 8시간 기준으로 한국 노동자는 OECD 평균보다 50일, 일본보다 58일을 더 많이 일한다. 일에 지친 한국노동자들은 짧은 여가시간을 TV시청, 수면 등 소극적이고 정적인 여가활동으로 소진해 여가만족도가 극도로 낮다.

노인들은 전 생애를 통틀어 가장 여가시간이 많은 세대이지만 노인여가에 대한 국가적 관심은 그동안 미흡했다. 주5일제가 본격 실시됐지만 청소년들의 여가활동 역시 외면 받고 있다. 게다가 21세기는 아이디어가 지식경제를 생산하는 창조적인 사회이고, 문화·예술적 창의성을 가진 인적자본이 요구되는 사회다. 여가활동이 바탕이 되지 않고는 21세기가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할 수 없는 이유다.

2005년부터 여가기본법 제정을 위해 학회활동에 앞장서 온 최석호(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는 “이제는 근면 성실한 장기노동자가 환영받는 사회가 아니라 창의적인 인재가 절실히 요구되는 사회가 됐다”면서 “그런 면에서 청소년 여가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미래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근본 바탕이 된다”고 말했다.

서완석 국장기자 wssu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