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정진원 (15·끝) 백두산 나무 십자가를 약국에 걸어놓은 까닭은?
입력 2013-01-20 18:16
내가 운영하는 약국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십자가가 보인다. 나무를 깎아 만든 거친 모양의 십자가인데 특별한 사연을 갖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를 지낸 김동완 목사로부터 선물받은 것인데 백두산 깊은 숲속에 숨어 예배를 드리던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이 직접 깎아 만든 것이라고 한다. 나는 매일 아침 출근하면 이 십자가 아래에서 직원들과 함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약국 문을 연다. 약 봉투에는 성경 구절을 새겨놓았다. 손님 중에는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도 많다면서 반대하는 직원도 있었지만 한 번도 중단한 적이 없다. 농어촌 교회에서 사역하시는 목사님들께는 무료로 약을 지어드렸다.
많을 때는 하루 400명 가까운 손님이 우리 약국을 찾는다. 멀리는 전남 목포 신안 해남에서도 찾아온다. 무슨 비방이 있나 캐내려고 위장 취업했다 며칠 만에 슬그머니 사라져버린 약사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 약국에 특별한 비방이나 비법은 없다. 그런데도 약효가 좋다고 소문나 전국에서 찾아온다. 개업한 지 50년이 됐지만 우리 약국에서 약을 지어먹고 잘못된 사람도 없고 시비를 걸어온 사람도 없다. 기도하면서 약을 짓는 약사의 마음과 기도하면서 약을 복용하는 환자의 마음이 하나가 됐기 때문이 아닐까.
약사는 주로 앉아서 일하는 직업이다 보니 허리디스크로 고생을 많이 했다. 서울대병원에서 수술을 두 차례나 받았는데, 90년대 중반에 받은 두 번째 수술은 여덟시간이나 걸린 대수술이었다. 수술에 들어가기 전 마취과 의사는 내 심장이 약하다고 주저했지만 난 수술을 받겠다고 고집했다. 집도의는 교회 장로였는데, 내 손을 꼭 붙잡더니 “장로님, 우리 기도하면서 하십시다”며 나를 격려했다. 당시로서는 쉬운 수술이 아니었지만 성공적으로 수술이 끝나 후유증 없이 완쾌됐다.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성격이라 글로 다 옮기지는 않았지만 험한 일도 적지 않게 겪었다. 보증을 섰다 빚을 떠안기도 하고, 돈을 빌려줬다 떼이기도 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적도 있다. “날마다 기도하라. 고난이 닥치면 성경을 묵상하며 지혜를 구하라”는 선친의 가르침을 따라 오직 하나님께 의지해 다시 일어섰다.
나는 아들만 3형제를 두었다. 선친께서 아들 중 하나는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는데 둘째가 신학 공부를 마치고 미국 LA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첫째는 내 사업을 돕고 있고, 셋째는 애니메이션을 전공했는데 지금은 사회복지에 뜻을 두고 공부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모두 감사한 일들이다. 하나님은 부족하고 모자란 나에게 넘치도록 복을 부어주셨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나를 붙들어주고 지켜주셨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며”(고전 1:27)라는 말씀에 그 뜻이 있다고 믿는다.
어릴 적 부모님은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잠 3;27) “그런 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같은 구절을 들려주셨다. 그 말씀대로 지금껏 세상 높은 곳 바라보지 않고 낮은 데 바라보며 낮은 이들 섬기며 살려고 노력했다. 세상적 기준으로 이것저것 계산하고 따졌다면 못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일이라 여기고 기쁨으로 받아들였다. 앞으로도 미력하나마 힘 닿는 한 내게 주어진 소명을 다하려 한다.
정리=송세영 기자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