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웅 목사의 시편] 루터에게 진 빚

입력 2013-01-20 18:04


로마에 갔을 때였다. 기차를 타고 피렌체로 이동하려는데, 기차 시간까지 몇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귀중한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하다가 내 마음 속에 가지고 있던 오랜 숙원을 하나 풀고 싶었다. 언젠가 로마에 가면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 있었는데, 그곳은 바로 일명 ‘빌라도의 계단’이라고 하는 곳이다.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로마에 사절단으로 와서 찾았던 곳으로, 그곳을 무릎으로 기어오르며 죄를 고백하면 죄 용서를 받는다는 전설이 있던 곳이다. 나는 루터의 진지한 고뇌가 서려있는 자리에 가서 그의 향취를 느끼고 싶었다. 루터를 생각하며 로마 시내의 지하철을 타고 ‘빌라도의 계단’이 있는 산타 스칼라 성당을 향했다.

루터는 어떤 사람이었던가? 그는 처음부터 종교개혁을 하겠다는 계획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자기 속에 있는 죄와 자아에 대한 진지한 고뇌를 정직하게 반응했던 사람이었다. 스타우피츠라는 수도원장은 고해성사를 하기 위해 워낙 자주 찾아오는 루터가 부담스러워서 소리쳤다고 한다. ‘루터여, 살인이나 간음죄가 아니면 내게 오지 말라.’ 그가 ‘빌라도의 계단’을 향한 것도 그러한 몸부림의 한 단면이었다. 구도자로서 인생과 진리에 대한 진지한 고뇌가 있었던 사람, 루터! 그가 결국 로마서의 말씀으로 해방과 자유를 누렸지만, 그가 얻은 결론만큼이나 우리에게 값진 도전은 구도자로서의 그의 인생 자세와 진지한 태도다. 어쩌면 종교개혁이라는 위대한 역사의 출발은, 용감한 저항이나 위대한 교리적 발견이기 이전에 인생에 대한 진지한 구도자적 자세, 그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나는 루터의 이 자세가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진지한 도전이 되기를 바란다. 한 젊은이가 말했다. 먹고 살 걱정만 없으면 인생의 의미와 목적은 한 평생 고민해야 할 주제라고! 나는 정정했다. 먹고 살 걱정이 있어도 인생의 의미와 목적은 목숨 걸고 고민해야 할 주제라고!

이 땅의 젊은이들이 불쌍하다. 죽기 전에 후회하는 것, 다섯 가지 중에서 첫째가 ‘남의 시선에 맞추기보다는 내 소신대로 살았더라면!’이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 생각을 못하고 사는 것 같다. 아마추어는 타인과 비교하고 프로는 자기와 싸운다고 하는데, 너무 많은 젊은이들이 아마추어 인생을 산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타인의 시선에 떠밀려서 20대를 보낸다. 인생의 기초공사를 부실하게 하고 보니 중년이 넘은 나이에 작은 시련에도 무너지는 것이다. 그래서 대학생신앙수련회를 할 때마다 이 학생들이 도둑맞는 인생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긴다. 산타 스칼라 성당 문을 나서면서 내 마음이 숙연해졌다. 그리고 싸구려 인생을 살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을 했다. 루터에게 나는 빚을 많이 졌다.

<서울 내수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