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에게 길을 묻다] (4) 강문규 지구촌나눔운동 이사장
입력 2013-01-20 21:02
“교회의 존재이유는 선교, 사회에 대한 책임 다해야”
강문규(82) 지구촌나눔운동 이사장에게는 자주 따라붙는 동역자들의 이름이 있다. 올 초 별세한 오재식 선생을 비롯해 박상증 박경서 등 한국교회 에큐메니컬(교회일치) 운동의 선도자들이다. 그만큼 그의 삶은 에큐메니컬과 이를 포괄하는 세계교회협의회(WCC)와 떼려야 뗄 수 없다. 그는 통일에 대한 언급조차 금기시되던 1980년대 초, 통일 운동을 처음으로 에큐메니컬의 프레임에 끌어들이고 이를 통해 한국교회가 남북 화해와 평화 통일에 한걸음 더 다가서게 했다. 지난 11일 서울 종로의 지구촌나눔운동 이사장실에서 그를 만나 한국교회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만난사람=정진영 부국장
-요즘 한국교회를 어떻게 보십니까.
“솔직히 말해도 되지요. 일제시대와 유신시절 등 어려울 때 오히려 사람들이 교회를 더 많이 찾았습니다. 이 시기에 교회가 팽창했고 이것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터전을 만들었지요, 그런데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발전하면서 갸우뚱하게 만드는 일들이 교회에 생기기 시작했고 특히 성장주의가 자리를 잡으면서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외면한 게 아닌가 생각돼요. 제가 볼 때는 지금 상당히 걱정스런 단계에 와 있지 않나 그렇게 봅니다.”
-지금 한국교회에 가장 시급히 요구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저는 선교라고 봅니다. 교회의 존재 이유가 바로 선교입니다. 건물과 같은 외형이 아니라 선교 정신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1970∼80년대 한국교회가 사회 선교 등 선교의 선두에 서 있지 않았습니까. 한마디로 얘기하면 지금의 한국교회는 초대교회 정신으로 돌아가야 된다는 뜻이지요. 다행히 한국의 초대교회 정신은 훌륭합니다. 많은 교회지도자가 민족지도자가 될 정도였으니까요.”
-초대교회 정신은 올해 국민일보 종교국이 주창하는 ‘근본으로 돌아가자’와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습니다만.
“그렇게 볼 수 있겠네요. 모두 본연의 목적, 존재 이유로 회귀하자는 것입니다. 스스로 살찌려 하고 교권싸움이나 하다 보니 선교정신이 잊혀지고 변절되기 시작한 것 아닙니까. 좀 전에도 얘기했지만 교회의 존재 이유인 선교정신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사회에 대한 교회의 본질적 역할을 잘하자는 것과 같습니다. 1970∼80년대 빈곤 퇴치, 산업 선교 등 특수 선교를 비롯해서 선교사명을 다한 것은 교회의 예언자적 사명에도 부합하는 것입니다. 사회가 잘 못하면 교회가 해야 되지 않습니까. 세계적으로 봐도 그래요. 교회의 예언자적 목소리가 크게 줄고 있어요.”
-이사장님과 WCC를 떼고 얘기할 수 없습니다. 오는 10월 부산에서 열리는 세계교회협의회(WCC) 10차 총회는 한국교회에 어떤 의미입니까.
“WCC는 7∼8년에 한 번씩 총회를 하고 아시아에서 열리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지요. 아마 이번 대회 이후 다시 아시아에서 총회가 열리기까지 1세기 정도가 걸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귀한 시간인 만큼 한국교회는 이번 기회를 잘 활용해야 됩니다. 다행히 한국교회는 다양한 경험을 축적했습니다. 교회의 본질적 특성인 보수 신앙의 색채에다 새 길을 개척해 온 진보주의, 여기에 이런 것들의 내용을 살찌우는 문화주의, 요즘 말로하면 다문화 경험까지 이미 갖고 있어요. 이 같은 한국교회의 창조적 경험을 세계에서 오는 5000여명의 기독인들과 나눌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는 겁니다. 한국교회가 갖고 있는 장점을 전파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시간인 것이지요.”
-한국교회 내 진보와 보수의 목소리를 잘 아우르는 등 대회 성공을 위해 준비할 것이 많겠지요.
“준비위원회 등에서 표면적으로 하는 대형 행사 같은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어요. 총회 과정에서 우리 기독교 역사에 녹아있는 정신을 미세하게 교류할 수 있어야 해요. 소그룹 단위로 나누어서 지도자가 아닌 한국교회 평균적 교인들의 정서가 대회 참가자들에게 충분히 전달될 수 있는 각종 나눔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다시 말해 평균적 교인이 가지고 있는 주장과 경험, 각자의 역사를 나눠 갖는 그런 프로그램이 많아야지요.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WCC의 특징과 정신을 한마디로 말하면 ‘개방’인데, 이는 바꿔 말하면 총회 중에 우리 입장에서 보면 깜짝깜짝 놀랄 만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예요. 이 과정에서 부분적인 것이 핵심인 것처럼 전달되고 잘못 인용되고 하는 일들이 있을 수 있겠지요. 그런 걱정스러운 면이 없지 않습니다. 진보와 보수 등의 다른 생각을 좁혀가는 일도 인내심을 가지고 잘 극복해야 됨은 물론이고요.”
-이사장님이 생각하는 에큐메니컬은 무엇입니까.
“교과서적으로 말하면 하나의 교회, 하나의 세계란 뜻이지요. 대내적으로는 교회일치, 대외적으로는 교회의 사회책임 완수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모두 엄청나게 두들겨 맞았습니다. 그때 제가 WCC에서 열심히 일할 때인데 KGB 돈 받아서 운영했다는 말도 들었고 용공 시비 등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WCC의 에큐메니컬 운동이 교회일치보다는 교회의 사회적 책임에서 훨씬 큰 성과를 냈습니다. 제가 4∼5년 전 WCC NGO 총회에 갔을 때 우연히 유엔에서 발간한 ‘금년의 과제’라는 책자를 사봤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WCC가 1960∼70년대에 주장했던 내용이 거의 그대로 있어요. 유엔이 ‘WCC 안건을 다 빼앗았다’고 말할 정도였어요. WCC의 목소리를 국제기구에서 수렴했다는 뜻이지요.”
-에큐메니컬 운동이 한국교회에서 잘 작동이 되고 있나요.
“한국교회에 양면성이 있다고 봐요. 한국교회가 에큐메니컬 운동의 전초전에 충분히 섰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다행히 강원룡 목사 같은 선각자들이 있었어요. 몇몇 선각자와 저와 같은 운동가들이 선도해 뿌리를 내렸어요. 그런데 에큐메니컬은 교회일치 운동이니까 교회가 외면하면 뿌리 없는 나무와 마찬가지예요. 그때 사회운동하고 데모하다 잡혀가고 이런 일이 많았는데 교회가 처음에는 반대를 하면서도 막상 잡혀가고 이러니까 또 다 껴안더라고요. 그게 한국교회의 포용력 아닌가 싶어요. 그런 과정 속에서 한국교회가 청년들의 경험을 내면화해 나갔지요. 그런 점에서 큰 틀에서 보면 한국교회는 에큐메니컬 운동을 잘 감당해왔다고 봅니다.”
-오랫동안 나눔운동 이사장을 맡고 계신데요. 나눔은 무엇이고 한국교회는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날이 갈수록 빈곤층이 늘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나눔을 통해 그걸 극복하는 게 사회적·시대적 사명이고 기독교의 중요한 선교목표라고 할 수 있는데 한국교회는 큰 장점을 갖고 있어요. 초기 선교사들이 금주, 도박금지와 함께 헌금하는 훈련을 잘 시켰어요. 그래서 남을 돕는 훈련을 잘 받은 기독교인들과 교회가 큰 도움이 되지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대표를 10년 하셨습니다. 새 정부 출범에 따른 남북 관계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남북 관계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어느 정도 하느냐에 달렸겠지요. 열심히 하면 성공 못할 이유가 없다고 봐요. 박 당선인을 보니까 고집스러운 데가 있으면서도 또 열린 데가 있는 것 같습디다. 박 당선인도 인도주의 지원은 한다고 못을 박았잖아요. 나는 남북문제에 관한한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어요. 1대 1이나 상호주의도 좋지만 이게 남북관계에서는 잘 맞지 않아요. 우리보다 30분의 1 정도밖에 안 되는데 우리가 조금만 더 너그러우면 잘 풀리리라 봅니다. 그동안 한국교회가 북을 많이 도왔는데 실수를 한 것도 있어요. 여러 사람이 북에 가서 교회를 짓겠다고 해요. 그런 것에서 벗어나서 단순하게 이북의 빈곤층을 돕는다면 이북도 반대할 이유가 없지요.”
-이 민족과 나라를 위한 올해 한국교회의 가장 큰 소명은 무엇입니까.
“교회가 통합을 선도하는 역할을 하면 좋겠습니다. 박 당선인도 통합에 관심이 있지 않습니까. 이는 교회일치와도 관계가 있고 교회가 진일보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에큐메니컬 전선의 확대다 이런 식으로 말할 것 없이 교회가 통합에 앞서 나갔으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인터뷰 이틀 후인 지난 13일 저녁 서울 명성교회에서는 한국의 진보와 보수 교단 대표들이 모여 WCC 10차 총회의 성공을 위한 4개항의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날 행사에서 축사를 한 강 이사장은 1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공동선언문에 대해 “이런저런 토 달 것 없이 좋게 평가를 해야 된다”며 “이는 한국교회사를 봐서도 잘된 것이며 이번 WCC 총회는 한국교회의 저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문규 이사장=1931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경북대와 미국 유니언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세계학생기독교연맹(WSCF) 부장(1965년)을 시작으로 한국기독학생총연맹(KSCF) 이사장(1975), WCC 국제문제위원(1975∼1990), 한국YMCA전국연맹사무총장(1974∼1996), WCC 의장(1998∼2008) 등 기독교 기관에서 주로 활동했다. 이밖에 소비자보호단체협의회장(1994∼1995),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상임대표(1999∼2009) 등을 역임했고 1998년부터 지구촌나눔운동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나의 에큐메니칼 운동 반세기 그 미완의 여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