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나루] 北 해킹 소동, 원인은 불통!
입력 2013-01-18 19:29
18일 오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둥지를 튼 서울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아침 일찍 출근하는 김장수 외교국방통일분과 간사에게 기자들이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전날 벌어졌던 ‘북한의 인수위 기자실 해킹’ 소동을 묻자 그는 “아는 바가 없다. 근데 기자실 해킹한다고 그게 뭐 도움이 될까”라고 짤막하게 반문한 뒤 인수위 사무실로 사라졌다.
전날 인수위 측이 “북한이 인수위 기자실을 해킹한 게 포착됐다”고 밝히자 TV 등 각종 매체는 큼지막한 글씨체로 긴급 속보를 내보냈다. 해킹을 통해 북한이 새 정부의 중요 정책 로드맵을 빼낸 게 되고,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남북관계는 뒤틀릴 수밖에 없는 일대 사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킹 소식을 처음 접한 인수위 출입기자들은 북한의 ‘소행’을 비난하기보다는 인수위를 더 비아냥댔다. 한 출입기자는 “내 노트북에 별 내용도 없는데 무슨 해킹이냐”고 했고, 다른 기자는 “오죽 ‘불통(不通) 인수위’ 사정이 궁금했으면 북한이 기자실을 해킹했겠느냐”고 꼬집었다. 기자들은 처음부터 인수위 발표를 신뢰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온 나라를 한바탕 뒤흔든 해킹 소동이 있은 지 하루가 지났지만 인수위 기자실에는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일부 기자들은 “북한 소행인지는 몰라도, 실제 해킹 시도가 있었는데 인수위가 덮으려는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인수위 측 해명이 명쾌하지 않기 때문이다.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은 전날 브리핑에서 국가안보를 핑계 삼아 해킹 시도와 그에 따른 피해 여부에 대해선 확인조차 해주지 않았다. 기자들의 노트북 비밀번호를 바꾸라는 말만 했다. 자신의 컴퓨터가 해킹당했는지도 모른 채 오늘도 인수위의 수백명 기자들은 대한민국 차기 정부의 근간이 되는 정책들을 취재하고 기사로 작성하고 있는 셈이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