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미디어 공정’] 쫓겨나는 美기자… 몰려가는 中기자
입력 2013-01-18 18:04
비자를 둘러싼 G2 언론전쟁
지난해 10월 25일 미국 뉴욕타임스는 중국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자녀와 처남, 어머니 등 일가가 핑안 보험회사 주식 1억2000만 달러 상당을 보유하는 등 모두 27억 달러(약 2조8514억원)의 재산이 있다고 폭로했다. 원 총리는 이례적으로 변호사를 통해 사실이 아니라며 반박 성명을 내기도 했다. 보도 하루 전인 24일에는 장예쑤이 주미 중국 대사가 직접 뉴욕타임스 본사를 찾아가 회사 고위층에게 해당 보도를 하지 말 것을 강경하게 요구했다.
그리고 두 달여가 지난 12월 31일 뉴욕타임스 베이징 특파원인 크리스 버클리는 가족과 함께 홍콩으로 떠나야 했다. 중국 문제에 정통했던 그는 2000년부터 중국에서 일했다. 그가 베이징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비자 연장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
중국은 공식적으로 서류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기자는 아무도 없다. 그가 원 총리 일가의 재산축적 의혹을 보도해 중국 당국을 분노케 한 것에 따른 보복이 아닌가 의심할 뿐이다.
뉴욕타임스의 고충은 이게 다가 아니다. 베이징 지사장으로 임명된 필립 판 기자 역시 기자 활동을 위한 비자가 8개월째 나오지 않아 부임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재정적 도움을 받고 있는 보이스오브아메리카(VOA)는 중국 주재 특파원을 늘리지 못하고 있다. 현재 2명의 특파원을 파견 중인 VOA는 중국 뉴스 증가로 2명의 특파원을 추가 배치할 계획이지만 중국은 명확한 설명 없이 비자 발급을 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5월에는 미국 국적을 지닌 알자지라 방송의 멜리사 찬 베이징 특파원의 비자 연장이 거부됐다. 그는 주로 인권운동가인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이나 탄압받고 있는 파룬궁 수련자 취재를 해왔다. 외신기자 비자 연장 거부는 1998년 이후 14년 만에 이뤄져 관심을 모았다.
외교전문 잡지 포린폴리시는 8일 ‘잠복근무, 우리는 왜 중국 스파이에게 비자를 내줘야 하는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중국의 외신기자 비자 정책에 맞서 미국 역시 상호주의로 맞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잡지는 공화당 소속 대너 로라배처 연방 하원의원의 기고문을 통해 중국이 비자 연장 거부라는 수법으로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는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데 반해 중국 언론은 미국에서 아무런 제약 없이 활동하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주장했다.
중 언론, 미국 진출 러시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미국으로 진출하고 있는 중국의 ‘미디어 공정’은 가히 위협적이다. 미 국무부에 따르면 신화통신과 중국 중앙TV(CCTV), 인민일보 등 14개 관영 매체 기자가 미국에서 취재활동을 하고 있다. 2011년 국무부에서 취재비자(I)를 발급받은 중국 기자는 868명에 달한다. 2010년 616명에 비해 252명이 늘었다.
특히 ABC와 NBC 등 미국 유수의 언론사가 모여 있는 뉴욕 브로드웨이가에는 중국 관영 매체의 진출이 눈에 띈다. 2011년 9월 중국일보 미국 지국은 ABC 방송국 건물 28층에 입주했다. 중국일보는 워싱턴과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내 주요 9개 도시에서 월∼금요일 하루 17만부의 신문을 발행하며 중국의 시각을 미국 독자에게 전하고 있다.
신화통신 북미총국 역시 브로드웨이가 1540번지 건물 44층에 1700㎡(약 514평)의 대규모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신화통신은 2011년 9월부터 이곳에서 관련 기사는 물론 영어방송도 송출하고 있다. 신화통신은 또 뉴욕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타임스스퀘어 광장에 가로 12m, 세로 18m의 대형 전광판을 24시간 운영하기도 했다. 인민일보 역시 지난해 4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30층에 281㎡(약 85평) 규모의 사무실을 얻어 사용 중이다. 인민일보는 뉴욕을 포함해 전 세계 32개 지사를 운영하고 있다.
CCTV는 아예 미국의 심장부인 워싱턴에 사무실을 마련했다. CCTV는 백악관에서 900m밖에 떨어지는 않은 뉴욕애비뉴 1099번지에 스튜디오 설비를 갖춘 3500㎡(약 1058평)의 대규모 사무실을 마련했다. 이곳에서 지난해 2월부터 뉴스와 토크쇼를 포함해 하루 4시간씩 미국 전역에 위성과 케이블을 통해 중국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다.
중국은 2007년 공산당 17차 당대회 정치보고를 통해 “문화적 소프트파워를 강화하고 중화문화의 영향력을 키우자”고 결정했다. 이후 관영 매체의 영향력 확대와 국제화 사업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붓고 있다. 2009년에만 450억 위안(8조1365억원)을 배정했으며 해마다 500억 위안을 국제화에 투자하고 있다.
중국 매체의 미국 진출이 활발한 상황에서 라디오프리아시아(RFA)나 VOA 같은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매체는 중국에서 방송조차 할 수 없다. 중국은 RFA나 VOA가 중국을 겨냥해 해외에서 송출하는 것도 전파방해를 통해 청취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중국에 비판적인 보도를 한 뉴욕타임스는 물론 최근 중국 혁명 원로 자녀의 축재를 폭로한 블룸버그 통신의 인터넷 홈페이지 접속 역시 중국에서는 불가능하다. 심지어 지난해 11월 시진핑(習近平) 공산당 총서기 취임 외신 기자회견에서 두 언론사는 현장 취재도 허용되지 않았다.
미국에선 공공연히 스파이 활동, 중국에선 취재 제한
이렇듯 미국 언론의 중국 취재가 제한을 받다 보니 불만의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로라배처 의원은 2011년 9월 ‘중국 미디어 상호법(Chinese Media Reciprocity Act)’을 발의했다. 법안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중국 기자에게 발급하는 취재비자를 중국에서 활동하는 미국 기자의 비자 발급에 맞춰 상호주의에 따라 발급하자는 것이다.
그가 이 법안을 제안하게 된 것은 미국에 입국한 중국 관영 매체 기자 중 상당수가 실제 기자가 아니라 스파이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들이 기자를 사칭해 미국에 들어와 티베트 문제나 중국 지도부가 관심 있는 정보를 수집한다는 것.
미 의회에 설치된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The US-China Economic and Security Review Commission)는 2009년 보고서를 통해 “신화통신은 뉴스 보도 기능 외에 일부 정보 기능도 담당하고 있다”며 “수집된 정보를 분류해 중국 지도자에게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특히 중앙정보국(CIA)이나 연방수사국(FBI)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중국의 국가안전부 요원이 신화통신이나 인민일보, 중국청년보 기자 등으로 위장해 미국에서 활동하기도 한다고 적시했다.
실제로 2000년 6월 미 국무부는 신화통신이 펜타곤 인근에 구입한 7층 건물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국방부를 염탐하려는 의도로 봤기 때문이다. 하원도 같은 우려를 표명했었다. 미 의회는 중국의 스파이 활동으로 해마다 10억 달러 가량의 손해를 보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로라배치 의원은 “미국이 중국에 조건 없이 최혜국 대우를 해준 것은 자유민주주의가 중국에서 확산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면서 “오히려 미국의 우방인 한국이나 일본, 대만, 필리핀 등에 위협만 더해졌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중국처럼 비자를 내주지 않는 등의 방법으로 중국 언론을 통제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다만 국무부가 중국의 진보적 주간지 남방주말(南方周末) 사태에 관심을 보인 것에서 보듯 ‘언론자유’라는 큰 주제를 놓고 중국에 직간접적인 압박을 가할 가능성은 높다.
문제는 중국이 쉽게 입장을 바꿀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언론을 당의 선전도구 정도로 생각하는 중국의 언론 정책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