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노트-백소영] 존재에의 용기
입력 2013-01-18 17:58
그 아이가 ‘존재하지 않음’을 선택할까봐 하루 종일 두려웠습니다. 누구냐고요? 월화드라마 ‘학교2013’의 등장인물 ‘민기’ 이야기입니다.
숨막히게 짜여진 엄마의 스케줄대로 살아가던 모범생이 월요일 방영분 마지막에서 학교 가방을 힘겹게 끌며 옥상으로 한 계단씩 걸음을 옮기며 끝났거든요. 피식, 웃음이 나시죠? 고작 드라마를 보고 하루가 초조했냐고. 아뇨. 짧다면 짧을 8년간의 선생 생활 동안 전 이런 불안한 밤을 숱하게 보내왔었거든요. 그 나이에는 딱 ‘죽을 만큼’ 힘겨운 아이들이 곁을 주는 것이 고마워서 만나면 만날수록, 격려하고 헤어진 밤은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겨우 고개를 끄덕이며 살아갈 용기를 선택하던 그 아이가 행여 또 다시 좌절하고 포기할까 봐요.
“선생님, 저도 지금 그냥 흔들리고 있는 거겠죠?” 옥상 위에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던 민기의 불안한 발걸음을 돌려준 것은 수능문제와 상관없다고 아이들이 구박했던 문학 선생님의 시 한 구절이었습니다.
‘이 세상 모든 꽃은 흔들리고 비바람 맞으며 줄기 곧게 세운 까닭에 곱게 피었다’는 시인의 격려와 그 시를 마음으로 읽으며 아이들이 예쁘게 피기를 바라던 선생님이 떠올라, 민기는 그렇게 ‘사는’ 선택을 했습니다. 고맙고 기특했는데… 드라마의 선생님도 똑같은 말을 들려주더군요.
‘유한한 자유’(finite freedom)! 틸리히라는 신학자는 인간의 실존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차라리 ‘자유 없는 숙명’적 존재라면 스스로 삶을 포기하지는 않겠죠. 그럴 자유가 없으니까요. 혹 우리가 신과 같은 ‘무한한 능력자’라면 존재함이 두렵고 불안할 리 없으니 포기하려 들지 않을 거구요. 하지만 우리는 ‘유한한 자유’라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마음과 함께 유한성으로 이 땅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용기는 늘 필요한 거예요. 한계에 부딪혀도 이 삶을 이어갈 용기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삶을 지어나갈 자유와 창조성도 주셨으니까요.
백소영 교수(이화여대 인문과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