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진홍] 대선 재검표

입력 2013-01-18 18:08

#“전국 80개 개표구(1104만9311표)에 대한 재검표 집계 결과 노무현 민주당 후보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간 득표 증감은 최대 1117표를 넘지 않았다.” 16대 대선 직후 한나라당이 제기한 당선무효 소송과 관련해 대법원이 2003년 1월 28일 발표한 내용이다. 한나라당 요구로 헌정사상 처음으로 실시된 대선 재검표 결과 노 후보는 785표가 줄었고, 이 후보는 135표 늘었다. 197표는 판정보류로 분류됐다. 판정보류표를 모두 이 후보표로 인정하더라도 두 후보 간 득표차 57만980표의 0.0019%에 불과했다.

당시 한나라당이 재검표를 주장한 이유는 이 후보 지지자들의 성화 때문이었다. 한 네티즌이 전자개표 조작설을 인터넷에 유포시킨 것이 기폭제가 됐다. 서청원 대표를 포함한 지도부는 당선무효 소송과 함께 투표함 등에 대한 증거보전 신청을 냈다. “한나라당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며 반대하는 목소리는 미미했다.

재검표 후폭풍은 거셌다. 한나라당은 조롱의 대상이 됐다. 서 대표는 대국민 사과한 뒤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17일 국회 본관 지하 1층 배드민턴장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18대 대선 개표 과정 시연회를 가졌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지지자 중 일부가 개표부정 의혹을 제기하며 재검표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 계기가 됐다. 민주당 진선미 의원은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선관위에 시연회를 요청했으며, 선관위는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시연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재검표 운동 단체 회원들이 불법으로 개표됐다며 거칠게 항의하면서 시연회는 고성과 몸싸움으로 얼룩졌다.

앞서 민주당 이석현 의원은 “초상집에서 이웃 사람들이 서럽게 우는데 정작 상주가 울지 않으면 뒷말이 없겠는가”라고 했다. 정청래 의원은 일부 시민들이 지난 1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대선 재검표 청원을 내는 데 다리를 놔주는 ‘소개 의원’ 역할을 맡았다.

국민 청원을 외면하면 부담이 될 것이라는 판단인 듯한데 10년 전의 대선 재검표 파동은 잊어버린 것인지 아리송하다. 대선 재검표 주장은 민주당과 문 후보에게 또 다른 상처를 줄 가능성이 크다는 게 당시의 교훈이다. 더욱이 이번 대선의 득표차는 108만496표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