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전쟁]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정전 60주년은 평화 꽃피는 디딤돌 놓는 시간”

입력 2013-01-17 21:32


“6·25 정전 60주년인 올해는 분단을 극복하지 못한 우리의 현실을 재조명하고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가 꽃필 수 있는 소중한 디딤돌을 놓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박승춘(65) 국가보훈처장은 올해가 전쟁의 상흔을 딛고 놀라운 성장을 해온 우리나라가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도약은 과거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엄격한 현실진단, 문제를 극복하려는 통합된 의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는 정전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올해 보훈처가 준비 중인 다양한 행사에는 이런 정신이 배어있다고 설명했다.

박 처장은 인터뷰 내내 ‘감사’와 ‘신뢰’라는 말을 많이 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풍요를 가능케 해준 수많은 이들에 대한 감사 표시가 더 많아져야 한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 33년간 군인이었던 그는 안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튼튼한 안보가 보장돼야 신뢰 구축도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인터뷰는 16일 서울 여의도 국가보훈처에서 1시간 동안 진행됐다.

-정전 60주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전쟁의 처참한 상흔을 극복하고 놀라운 성장을 해온 시기다. 보훈처는 1975년부터 6·25전쟁에 참가했던 유엔군 참전용사들을 초청해 감사하는 행사를 해왔다. 이들은 임진강이나 가평 등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현장과 기업들을 방문하고 부산 유엔군 묘지 등을 찾아 참배하면서 감격스러워한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맺어질 때의 한국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많은 참전용사들이 눈물을 흘린다. 동료를 잃었고 자신의 몸에 아직 전쟁으로 인한 상처들이 남아있지만 그 희생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도 분단을 극복하지 못했고 남북간에 무력충돌이 발생하는 불안정한 시기도 있었다. 과제가 남아있는 미완의 시기라고도 볼 수 있다.”

-보훈처가 준비하는 정전 60주년 행사에는 이런 의미를 담고 있는가.

“그렇다. 미완의 과제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과거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특히 전후세대들은 근현대사에 대한 인식이 약하고 6·25전쟁도 잘 모른다. 휴전선 155마일 종주, 전쟁 미체험 세대를 위한 기록사진전 등 젊은세대와 함께하는 행사를 통해 6·25전쟁의 의미와 정전체제의 과제를 고민하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지난 60년간 혈맹으로 맺어진 참전국들에 대한 감사의 행사도 마련한다. 참전국들과의 지속적인 우호관계는 우리 안보를 단단히 해주었고 경제발전에 우호적 환경을 조성해줬다. 정부 주관의 60주년 기념식에는 참전 21개국 정부대표를 초청해 감사를 표하고, 21개국 현지에서도 보은행사를 갖는다. 참전용사 후손들에 대한 지원도 확대할 예정이다. 정부 행사도 중요하지만 민간 참여는 더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국민일보가 정전 60주년 기획기사를 연중 내내 연재키로 한 것은 정말 고맙고 의미 있는 일이다.”

-해외 참전용사들은 우리 정부의 감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에 대한 그들의 애정을 확인하고 감동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지난해 뉴질랜드와 캐나다에서 보훈행사를 가졌을 때 5∼6시간 걸리는 곳에서 배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온 사람이 많았다. 앞면에는 자기 나라 글로, 뒷면에는 한글로 쓰인 명함을 건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6·25전쟁에 참가했었다는 자부심도 많았고, 참전용사 전우회 등과 같은 공동체를 만들어 한국을 지원하는 일도 하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이들이 큰 자산이다.

이들은 수십 년이 지났지만 꾸준히 찾아와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는 것에 대해 고마워한다. 한 참전용사는 “여러 전쟁에 참여했지만 우리 희생을 기억해주는 곳은 한국밖에 없는 것 같다. 정말 고맙다”고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보훈병원 등에서 치료받고 있는 분들이 있다. 많이 안타까웠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미국도 정전 60주년 행사를 대대적으로 펼칠 것이라고 한다.

“유엔군 참전 인원의 92%가 미국인이었고 희생도 컸다. 일부에서는 ‘잊혀진 전쟁’이라고 하지만 미국은 참전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아시아에서 공산주의에 대항해 민주주의를 지켜낸 소중한 전쟁이었다. 지난해 미국은 처음으로 정부가 주관하는 정전 59주년 행사를 가졌다. 의회도 2012∼13년을 ‘한국전 참전용사의 해’로 결의해 다양한 기념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올해 미국 정부 주관으로 열리는 한국전쟁 기념식에 참석할 예정인 것으로 안다.”

-국내 참전용사들의 처우가 개선됐지만 아쉬운 점이 적지 않을 것 같다.

“국가보훈은 국가의 유지와 발전에 필요한 정신적·사회적 기반을 만드는 국가 핵심 정책 가운데 하나다. 지난 50여년간 유지돼온 보상체계를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보상금은 4% 인상했고 참전수당도 12만원에서 15만원으로 높였다. 중앙보훈병원 추가 건립 등 의료시설도 확충하고 있고, 선진국에서 시행하는 참전용사 개인주치의제도 도입도 고려하고 있다. 지난 2년간 보훈처장으로서 200만 보훈가족을 위해 일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었다.

하지만 참전용사들은 젊은 나이에 전쟁에 참가해 공부도 제대로 못하신 분이 많다. 정말 어렵게 사는 분들이다. 대부분 연세도 여든이 넘었다. 그래서 더 잘해드리고 싶은데 예산 제한으로 충분히 못해드리는 것이 늘 아쉽고 죄송하다.

경제적 처우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이 이들의 희생을 높이 평가해주는 보훈의식이 더 높아져야 할 것 같다. 국민들의 보훈지수가 2008년 61.5점, 2011년 67.5점으로 여전히 낮은 편이다.”

-정전 60주년을 미완의 체제라고 했는데.

“아직도 분단국가다. 60년의 분단 상황을 극복하지 못했는데 월등한 경제력과 한·미동맹이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있음에도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필요하다. 이념 대결로 인한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고 통합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올해를 기점으로 이전 과제들을 풀어가는 노력이 보다 가시화되기를 바란다.”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말로 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역사를 보면 정치적·군사적 신뢰가 없는 평화협정은 종잇조각에 불과했다. 북한이 여전히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를 구축하고 군사적 대결 상황을 조성하는 한 평화체제 전환은 요원하다. 다자안보체제를 구축하는 것도 실효성이 높지는 않다.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정상 국가로 신뢰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군에서 북한 문제를 많이 다뤄왔는데 북한이 변할 수 있다고 보나.

“변화될 수밖에 없다. 옛 소련과 중국이 북한의 든든한 울타리 역할을 해왔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이전과 달리 외부의 다양한 영향들이 북한 사회에 스며들 것이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은 이전보다 북한 사회의 폐쇄성과 왕조적인 운영에 대한 부담이 적다. 당장은 체제 강화와 권력기반 안정화를 위해 강압적인 체제를 유지하겠지만 궁극적으로 변화한다고 본다.”

朴 처장은 누구

1971년부터 33년간 군인으로 복무하다 육군 중장으로 예편했다. 합동참모본부에서는 전투정보과장을 거쳐 군사정보부장으로 북한 정보를 주로 다뤘고, 합참 정보본부장을 지낸 북한문제 전문가이다.

재직 중 업무추진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2004년 7월 북한 경비정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했을 때, 남북 함정 교신내용이 언론에 보도된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군복을 벗었다. 2005년에는 한나라당 국제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정당 활동을 하기도 했다.

군 복무 시절 말레이시아 지휘참모대학에서 수학했고, 전역 후에는 경희대 행정대학원 북한정책학과에 진학해 석사 학위를 따는 등 꾸준히 전문적 소양을 닦아왔다. 2011년 2월 국가보훈처장에 임명됐다.

△강원도 강릉(65) △육사27기 △합참 전투정보과장 △12사단장 △합참 군사정보부장 △9군단장 △합참 정보본부장 △단국대 초빙교수 △국가발전미래교육협의회장

만난사람=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 사진=김태형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