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 없애는 것은 개미 죽이기 보다 쉽다”… 中당국 압력에 결국 굴복 신경보 기자들 눈물의 수기
입력 2013-01-17 19:12
지난 8일 오후 8시30분쯤 베이징 둥청취 싱푸대로 37호에 있는 신경보 사옥 편집국. 베이징시 공산당 선전부의 옌리창(嚴力强) 부부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편집국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회의실로 다이즈겅(戴自更) 사장과 왕웨춘(王躍春) 편집국장을 불러들였다. 2003년 창간된 신경보는 경영권이 베이징시에 있다.
옌 부부장은 “9일자에는 사설이 무조건 들어가야 한다”고 지시했다. ‘어떤 개혁도 대국(大局)에 손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라는 제목의 환구시보 7일자 사설이다. 남방주말 사태가 외부 세력이 개입된 사건으로 사회의 안정적 발전을 위해 당의 언론조정 역할은 흔들림 없이 지속돼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이 사장과 왕 편집국장은 사설 게재를 단호히 거절했다. 기자들도 안심하고 하나둘씩 퇴근했다. 그렇지만 옌 부부장도 쉽사리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크기는 상관없으니 반드시 사설을 게재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다이 사장 등도 “사설을 게재한다면 그만두겠다”며 맞대응했다. 긴박한 대치는 밤 12시가 되도록 계속됐다. 당초 몇 시간만 버티면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던 기자들은 대치상황이 계속되자 하나둘 회사로 모여들었다.
다이 사장은 회의실로 기자들을 불러 의견을 들었다. 기자들은 사설 게재를 강력히 반대했다. 다이 사장은 “최악의 경우 신문이 발행될 수 없다”면서 사설을 요약해 싣기로 타협했다고 말했다. 크기는 절반 정도 줄이고 눈에 띄지 않는 오른쪽 하단에 배치했다.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새벽 1시쯤 환구시보의 사설이 실린 신문이 윤전기에서 인쇄되기 시작했다.
요미우리신문은 17일 신경보 기자들이 강압적인 사설 게재를 목격하며 느꼈던 자괴감을 표현한 수기를 입수해 보도했다. 당초 인터넷에도 게재됐지만 당국이 이를 삭제했다.
작성자가 밝혀지지 않은 수기는 “신문 통제에 대한 증거를 남기기 위해 작성됐다”면서 사설 거부는 “이치에 맞지 않고 양심에도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수기는 “선전부가 신문사를 죽이는 것은 한 마리 개미를 죽이는 것보다 간단하다”고 맺었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