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도 군사개입 적극 검토…‘제2의 아프간’ 우려
입력 2013-01-18 01:05
프랑스의 북아프리카 말리 내전 군사개입이 인접국 알제리 이슬람 무장세력의 민간인 대규모 인질 참사로 비화됐다. 숨진 인질은 대부분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방 국가 민간인들이어서 사망 경위가 어찌됐든 국제적 비난은 피할 수 없게 됐다. 특히 인질 참사는 그동안 말리 등 북아프리카 소요사태 군사개입을 꺼리던 미국의 개입을 본격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나긴 전쟁의 또 다른 시작일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대규모 인질극 결국 참사로= 알제리 정부군의 인질 납치범 진압작전은 납치 하루 만인 17일 오전(현지시간)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이들은 공격용 헬기로 알제리 동부 인아메나스 천연가스 생산시설에 인질을 억류한 이슬람 무장세력을 겨냥해 폭격했다. 무장세력은 인질을 데리고 버스로 이동하려는 순간 공격을 받았다고 모리타니통신 등은 전했다. 알제리군은 헬기 공격에 이어 가스전에 지상군을 전격 투입했다. 양동작전을 쓴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 정부 당국도 알제리 정부군의 군사작전이 이뤄졌다고 확인했다.
AFP통신은 정부군 공격 과정에서 사망한 외국인 인질은 34명이며, 미국인 2명과 벨기에인 3명, 일본인과 영국인 등 7명은 살아남았다고 전했다. 억류된 인질은 노르웨이 에너지업체 스타토일, 영국 BP, 일본 JGC 직원들이었다. 앞서 정부군은 가스전을 포위한 채 인질 석방을 요구했다. 무장세력은 정부군이 물러나기 전에는 석방 협상에 나서지 않겠다고 주장했으나 알제리 정부는 “테러리스트와 협상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무장세력의 가스전 공격은 하루 전인 16일 오전 5시에 발생했다. 가스전을 박격포와 소총 등으로 공격해 외국인 41명을 인질로 붙잡았다. 인질은 노르웨이인 9명, 미국인 7명, 일본인 5명에 영국 오스트리아 프랑스 아일랜드 말레이시아 필리핀인도 포함됐다. 앞서 일부 현지 언론은 외국인 인질 15~25명이 정부군 공격 전 극적으로 탈출했다고 보도했으나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알카에다 연계된 복면여단 소행= 인질극을 벌였던 무장세력은 ‘복면여단(masked brigade)’ ‘피의 대대(battalion of blood)’로 불리는 준군사조직이다. 외눈의 알카에다 전사 모크타르 벨모크타르(사진)가 이끌고 있다. 그는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에서 옛 소련군에 대응해 게릴라전을 벌여온 인물이라고 BBC방송은 소개했다. 벨모크타르는 프랑스 정보당국에선 ‘잡히지 않는 자(uncatchable)’로, 알제리 내부에선 불법담배 사업 때문에 ‘미스터 말보로’로 불린다. 이들은 말리 북부에서 주로 활동해 왔으나 알제리로 이동해 가스전의 주요 에너지 업체 직원들을 공격 목표로 삼았다.
‘복면여단’은 인질극이 프랑스군의 말리 반군 공격을 돕는 알제리 정부에 대한 보복 차원이라고 모리타니 국영 통신을 통해 주장했다. 이들은 또 프랑스군이 말리에서 즉각 철수해야 인질을 석방할 것이라고 밝혀왔다.
◇미국 적극 개입으로 선회할 듯=가뜩이나 말리의 이슬람 반군과 접전을 펼치고 있는 프랑스는 자국인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국민들까지 이웃 나라에서 사망하자 곤혹스러운 입장에 빠졌다. 인질 참사는 말리 내전을 글로벌 전쟁(global war)으로 만들어 가는 형국이라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알제리 인질사태를 계기로 말리 내전에 소극적으로 대응했던 미국이 적극적으로 선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 정부는 앞서 아프간 주둔 미군 철수 등으로 국방예산이 향후 10년간 최소 5000억 달러가 감축되는 상황에서 또 다른 전쟁을 시작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뉴욕타임스는 미 정부가 그동안 말리 문제는 미국 또는 유럽이 아닌 아프리카 내부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지만 인질사태로 이런 원칙을 바꿀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미 행정부는 미국인 인질이 살해되면 말리에 미군 전투병력, 특히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기로 했던 기존 방침을 재고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미국은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세력에는 직접 군사 지원을 금지하고 있다. 현 말리 정권은 지난해 3월 쿠데타로 집권했다.
말리 사태에 대한 유럽 각국의 직접적인 군사 개입 역시 가시화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아프리카 각국은 전투병을 파견했거나 파견 의사를 밝힌 상태다.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 연합군은 2000여명의 병력을 우선 파견키로 결의했고, 차드 역시 2000명을 파병하기로 했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