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차정식] 약속과 사과의 수사학
입력 2013-01-17 18:45
‘약속’이란 말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사과’라는 말도 그 실체가 모호한 상태에서 겉돌며 천시당하고 있다. 대선의 후유증이 그 발화지점이다. 양대 정당 모두 국회의원의 특권을 내려놓겠다는 말로 국민들의 귓전을 간질이곤 했다. 누가 봐도 황당하게 입안된 국회의원 연금법을 폐지 또는 대폭 손질하겠다는 공약이 그 가운데 있었다. 민주당에서는 의원들의 세비를 30% 삭감하겠다고 화끈하게 약속했다.
그런데 그 약속의 현주소가 실종되면서 슬슬 망각의 저편으로 돌려버리려는 꼼수가 엿보인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공약한 노인기초연금의 증액과 4대 중증질환에 대한 전폭적인 의료보험금 지원 등과 같은 복지 공약도 실현 불가능한 것처럼 정부와 여당 일각에서 반발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이러다가 핵심 공약에서 새 정권의 책임자들이 슬슬 손을 빼면서 오리발을 내미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대선에서 패배한 민주당은 ‘사과 투어’를 하겠다고 돌아다니는데 이건 너무 빤한 메뉴라 식상해하는 반응이 많다.
국가지도자 약속은 엄중해야
약속은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 특히 한 공동체나 국가 지도자의 약속은 엄중해야 하고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최선을 다해 약속을 지켜나가는 과정에서 혹여 판단 착오와 현실적인 제약으로 인해 그것을 온전히 이행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정직하게 국민 앞에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야 한다. 뼈를 깎는 사과가 수반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나아가 그 사과는 책임을 지는 ‘회개의 열매’를 포함해야 한다. 약속을 곧이곧대로 믿은 사람들의 실망과 좌절이 엄연한데 공인의 사과가 단순히 미안한 심정을 외교적 겉치레 형태로 내비치는 것은 누가 봐도 파렴치한 짓이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말씀으로 약속하시는 언약의 신으로 등장하신다. 그는 자신의 백성들을 불러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의 충실한 준수를 요구하신다. 약속의 무시나 불이행에 대한 하나님의 추궁은 실로 엄중했다. 단순히 말의 사과가 아니라 철저한 참회로 온전히 책임을 지라는 것이었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곧 그 잘못에 대한 징벌의 감수를 의미했다. 은혜와 자비의 하나님답게 그는 자신의 백성들에게 관대한 용서의 기회도 숱하게 제공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책임에서 면제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은 결정적인 순간 단호하게 약속의 파괴에 대한 책임을 물어 그 당사자들을 멸절시키다시피 하면서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했다. 그는 특히 백성들을 잘못 인도한 지도자들의 책임에 대해 매우 혹독한 처분을 내렸다. 예수 역시 정치 및 종교 지도자들의 잘못된 처신이 그 허황된 말의 약속에 있음을 간파하면서 그들의 위선적인 이중성을 강하게 질타했다. 게다가 그는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장차 심판의 자리에서 심문을 받으리라고 경고했다. 함부로 약속을 남발하고 그 허방에 대해서는 편리한 사과로 책임을 모면하려는 습성이 더 이상 통하지 않으리라는 준엄한 선언이었다.
국민 기망하려는 행태 멈춰라
국회의원과 대통령, 국가와 공기관의 대표 지도자들은 더 이상 헛된 약속으로 국민을 기망하려는 행태를 멈추어야 한다. 이미 한 약속은 심혈을 기울여 최대한 성실하게 이행하되 그 한계에 대해서는 정직한 해명을 통해 신뢰할 만한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약속과 사과가 말의 번지르르한 수사로 겉도는 모습을 국민들은 지금까지 볼 만큼 봐왔다. 무엇보다 모든 말의 약속을 섬세하게 기억하는 언약의 하나님 앞에 떨리는 심정으로 최후의 기회를 선용해야 한다. 진지한 회개의 열매로 제 말의 후과를 책임지고자 하지 않는 이들, 허황된 기만의 말로 국민을 무시하는 지도자들은 더 이상 미래가 없음을 통렬하게 깨달아야 할 것이다.
차정식 한일장신대 교수 신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