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민행복기금 모럴해저드 경계를
입력 2013-01-17 18:44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대선 공약인 국민행복기금이 시행도 되기 전에 이를 둘러싼 일부 금융기관과 대출 소비자들의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 사태에 직면했다. 총 18조원 규모로 조성되는 행복기금은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로 갈아타도록 하거나 채무감면 폭을 원금의 최대 50∼70%로 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어 당초부터 모럴해저드 위험이 제기됐는데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다.
대선 직후부터 업계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모럴해저드가 감지되고 있다. 빚 상환을 미루는 사람이 느는가 하면 부실채권을 회수하는 일을 맡은 추심회사들의 실적이 급격히 하락하는 상황도 확인된다. 심지어 일부 대부업체들은 저금리 대환대출을 염두에 두고 고금리 신용대출을 권하는가 하면 대출 소비자들도 고금리 대출을 문의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행복기금은 처음부터 논란이 적지 않았다. 찬성론자들은 저소득층 다중채무자들에게 도움으로 작용할 것이며 금융권이 떠안아야 할 부실채권을 행복기금이 감당하게 됨에 따라 금융권의 수익성 개선에 도움이 되리라고 봤다. 반면 채무자들이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풍토가 확산돼 결과적으로 금융시장 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비판론도 있었다.
이뿐 아니라 성실하게 빚을 갚아온 사람에게는 혜택이 없는 이른바 형평성 훼손, 금융거래에서의 자기책임 원칙 파기 등의 문제도 제기된다. 가계부채가 1000조원에 육박한 가운데 저소득층은 고금리·다중채무자가 늘고 있고 학자금 대출 연체율이 날로 높아가는 상황에서 박 당선인이 행복기금을 통해 나름의 해법을 모색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태생적 한계는 피할 수 없다는 얘기다.
당초 행복기금 수혜자를 320여만명으로 넓게 잡았다가 이 같은 부작용을 감안해 우선지원 대상을 1년 이상 연체자 48만명으로 좁힌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이에 더하여 정책 취지에 맞게 구체적인 계획을 빨리 마련함으로써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예컨대 행복기금 지원적용 시점을 제도 시행에 맞출 것이 아니라 적어도 대선 이전으로 몇 개월 앞당겨 적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대상자 선정 과정에서 각각의 소득 수준을 철저히 따지는 노력도 중요하다. 여기에 사후 관리감독 강화도 빼놓을 수 없다. 행복기금은 저소득층의 빚을 줄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지만 모럴해저드를 경계하는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빚을 갚으려는 자에 대해서는 채무감면 비율을 상향 조정하는 등의 인센티브제도를 병행하는 것도 바람직하겠다. 행복기금뿐 아니라 하우스푸어, 렌트푸어 등에 대한 지원 방식과 관련해서도 시장경제의 근간, 즉 자기책임원칙 훼손을 최소화하는 범위 내에서 모럴해저드를 각별히 경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