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훈의 현대시 산책 감각의 연금술] (46) 유언의 어떤 유형… 시인 이이체

입력 2013-01-17 19:10


시집 1000권 읽은 탄탄한 습작시절

외면된 것들을 내면으로 끌어오다


이이체(25)의 본명은 재훈이다. 같은 이름의 선배 시인이 활동 중이어서 스스로 필명을 지었다. ‘이체(異體)’. ‘다른 몸’이라는 뜻이다. 성공회대 2학년 때인 2008년, 스무 살 나이에 월간 ‘현대시’로 등단했으니, 누구는 그에게서 특출한 문재(文才)를 읽기도 한다. 그 특출함은 얼마나 진지하게 문학을 하느냐와 관련돼 있을 터. “시를 쓸 때 늘 치부와 상처를 구태여 다시 되짚어보면서 시작하니까, 제게 시는 외면된 것들을 내면으로 끌어오는 아픈 습관 같습니다.” 이 정도면 진지성은 담보되고도 남을 것이다.

1988년 10월 충북 청주 태생. 걸음마 떼고부터 대전에서 자랐기에 대전이 고향이나 다름없다. 지금도 본가는 대전에 있다. 클래식 작곡을 전공한 어머니는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까지 노상 턴테이블이나 카세트테이프 음악을 들려주었다. 아직도 곡명은 모르면서 곡조를 기억하는 음악들이 여럿 있다. 지금도 아들에게 학자가 되어, 이끌리는 논제들을 연구하는 삶을 살라고 조언하는 아버지는 연구원이다.

“제 식대로 학습하고 제 식대로 터득하는 자의적인 프레임이 강한 편이라서 스스로 걱정스럽다”고 말하는 이이체. 대학에 들어간 2007년부터 학과 공부를 전폐하고 시를 읽었는데, 등단 무렵까지 읽은 시집이 대략 1000여 권이다. 중독과 몰입이 그의 장점이자 단점인 것이다. 대학 초년생 때 시를 쓰려고 휴학을 했고, 배를 곯으며 막노동을 하다가 지친 몸으로 습작을 하기도 했다. “그 시절, 고시원에서 살았는데 몸이 갇혀 있는 것보다도 내 몸의 내부에 시가 갇혀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들이 가장 절망적이었어요.”

시가 주는 감흥은 읽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체적인 그의 시적 아우라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종말을 예감하는 ‘유언’, 즉 ‘다잉 메시지’를 연상하는 것과 관련돼 있다. 그에게 시는 일종의 유언 같은 것이고 유언을 쓰는 모습 자체일 수도 있다.

“눈을 감아도 보이는 게 있다. 눈 덮인 산허리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차가운 손길에 나는 몸을 움츠린다. 너는 칡넝쿨로 너를 묶은 채 웅크려 있다. (중략) 너는 메아리처럼 차츰 사라져간다. 나를 풀면 위험해. 너는 내게 손 내미는 대신 말을 내건다. 떨어지려는 것처럼 흔들리는 도토리들. 칡넝쿨이 너를 옥죄고, 나는 너를 풀지 못한다”(‘사라지는 포옹’ 부분)

첫 시집 ‘죽은 이를 위한 송가’(2011)에 수록된 이 시엔 손이 풀어질 줄 알면서도 껴안고 마는 포옹처럼 우리는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왜 살아가는가, 우리는 사랑한 후에 헤어질 줄 알면서도 왜 사랑을 하는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감춰져 있다. 삶 속의 모든 게 실은 시한부의 질료이지 않은가. 모든 게 폐허로 변한다는 걸 알면서도 너를 안은 채 눈을 감는 껴안음의 방식이야말로 ‘사라지는 포옹’일진대, 이이체의 시선에서는 고통과 상처마저도 포옹의 대상이자 사랑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가 첫 시집의 ‘표4 산문’에 쓴 “잔류하는 이형(異形)의 삶” 역시 제3의 자연으로서의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첫 시집 이후, 그는 어떤 맥락으로 이 사랑의 방식을 구체화하고 있을까.

“캐시, 오해의 유곽에서 당신을 되찾고 있소/ 애원의 어떤 유형은 공포의 수완에 불과하오/ 모든 것이 감동적이어서/ 어느 것에도 감동할 수 없소/ (중략)/ 한 가지 색의 무지개가/ 이 언덕의 백야를 적실 때,/ 기억은 당신의 머리카락처럼 흘러갈 거요/ 캐시, 나는 유언하고도 살아 있소/ 아무도 죽지 않아서 슬프오/ 우리는 사랑 때문에 계속 자살하고 있소/ 제발,/ 남몰래 아름답기를…”(‘폭풍이 끝난 히스클리프’ 부분)

영국 소설가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폭풍의 언덕’에 나오는 두 주인공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캐시) 간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패러디한 이 시에서 사랑은 그 이루어지지 못하는 불가능성과 함께 현 시점에서 불타고 있다는 것을 개관하고 있다. 이이체의 시들은 이처럼 인생을 먼저 살아버린 ‘늙은 아이(老幼)’의 유언과도 같다.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