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상온] 뮤지컬

입력 2013-01-17 18:24

1960년대 후반이었던가, 70년대였던가. 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국내에서 리바이벌 상영됐다. 1961년도 아카데미상을 휩쓴 뮤지컬 영화의 걸작.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현대 뉴욕으로 옮긴 영화를 흥미진진하게 감상하던 중이었다. 줄리엣 격인 여주인공 마리아가 로미오 격인 연인 토니에 의해 오빠 베르나르도가 살해된 뒤 오빠의 시신을 부여잡고 슬픔에 겨워 노래 부르는 장면이 나왔다. 갑자기 뒷좌석에서 낄낄대는 웃음소리와 함께 쯧쯧 혀 차는 소리, “오빠가 죽었는데 노래라니”하고 중얼대는 소리가 들렸다.

원래 뮤지컬에서는 감정을 대사 대신 노래와 춤으로 전달한다. 그러나 뮤지컬에 낯설었던 당시 한국 관객은 이해하지 못했다. 실제로 뮤지컬 영화를 보면 시도 때도 없이 노래와 춤이 나오는 바람에 한국 관객들은 그것이 어색해 요새 말로 ‘손발이 오글거리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 결과 우리나라에서 뮤지컬 공연은 물론 영화도 푸대접을 받아 왔다. 물론 아주 특별한 예외도 있긴 하다. 이를테면 사랑스런 아이들이 잔뜩 나오는, 역시 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뮤지컬답지 않게’ 큰 히트를 쳤다.

이처럼 ‘사운드 오브 뮤직’ 정도를 제외하면 뮤지컬 불모지나 다름없던, 주인공이 슬픈 감정을 노래로 표현하는 것을 이해 못하던 우리 사회의 뮤지컬 풍토가 상전벽해가 됐다.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이 지난 12일 누적 관객 470만명을 동원해 뮤지컬 영화 사상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운 것.

레미제라블 흥행 돌풍을 놓고 갖가지 분석이 난무한다. 우선 미국에서도 최근 OST가 빌보드 앨범차트 1위에 오를 만큼 훌륭한 음악과 프랑스 혁명기를 배경으로 한 스펙터클한 영상이 꼽힌다. 거기에 덧붙여 휴 잭맨, 러셀 크로, 앤 해서웨이 등 톱스타들의 멋진 연기 앙상블에 빅토르 위고의 원작이 주는 스토리의 친숙함도 주요인으로 거론된다. 그런가 하면 영화 외적으로 ‘빈민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힐링 및 감동이 요구되는’ 한국 상황의 특수성도 한몫 단단히 했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옛날과 달리 뮤지컬을 이해하고 즐길 줄 알게 된 한국 관객들의 성숙함이 기본 토양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다만 아직은 공연이건 영화건 수입 뮤지컬이 대종을 이루는 국내 뮤지컬 풍토가 하루빨리 창작품 우위로 돌아서게 되기를 기대한다.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