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김용호] 인수위가 명심해야 할 것
입력 2013-01-17 18:24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국정의 방향을 정하고 행정부 조직개편안을 발표함에 따라 관료사회와 국민들의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고 있다. 조직과 기능이 축소되는 행정부서는 울상이 된 반면, 부총리급으로 격상된 기획재정부, 통상 기능을 회수한 산업통상자원부, 부활된 해양수산부 등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 더욱이 중소기업, 과학기술, 복지 등에 종사하는 분들은 한껏 희망에 부풀어 있지만 대기업을 비롯해 규제나 불이익이 예상되는 분야는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다섯 번에 걸친 인수위 경험에 비춰볼 때 국민들은 새 정부에 대해 냉철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대통령의 임기 5년 동안 할 수 있는 일이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너무 높은 기대를 가지면 나중에 실망이 커질 수 있다. 민주화 이후 모든 대통령이 상대적으로 빈곤한 권력자원과 짧은 임기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국정목표를 설정하는 바람에 소기의 성과를 올리지 못하는 ‘과잉 리더십(hyper leadership)’을 보여 주었다.
결국 임기 초반 국민들의 과도한 열망이 임기 후반에 엄청난 실망으로 귀결되는 ‘열망-실망’의 악순환을 거듭했다. 따라서 이번 인수위는 국민들의 기대수준을 낮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선기간 박근혜 후보는 앞으로 5년 동안 국내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모두 아는 것처럼 공약을 제시했으나 앞으로 국내외 돌발 사태로 인해 자신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우리나라 경제, 외교, 국방 등이 대외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에 나라 밖에서 일어나는 일로 인해 대통령의 공약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인해 이명박 정부는 7-4-7(7% 성장, 4만 달러 국민소득, 7대 경제대국) 공약을 실천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더욱이 새 정부가 약속한 민생, 국민 대통합, 경제 민주화 등에서 업적을 내려면 적어도 1∼2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데 실시간 반응을 보이는 모바일에 익숙한 국민들은 참을성이 적어서 6개월이나 1년을 기다리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3개월도 안돼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시위가 등장한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인수위가 이런 일을 예방하려면 정부가 모든 일에 직접 나설 게 아니라 국민들이 박근혜 정부의 공약 사업에 참여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동안 박 당선인이 국민행복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지만 정부가 모든 국민의 행복을 보장할 수 없다. 다만 국민들이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제공할 뿐이다.
결국 국민들이 이러한 기회를 살려 스스로 행복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언론과 국민들은 조그만 일만 벌어져도 걸핏하면 “대통령 나와라, 청와대는 무얼 하고 있나”라고 대통령이나 정부를 탓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정치문화 속에서 인수위가 국민들의 기대를 너무 높이는 경우 오히려 화근이 될 수 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설득하고, 국민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얻어야 한다. 김대중 정부 인수팀이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온 국민의 금 모으기 운동을 제창한 것은 좋은 사례다. 이번에도 인수위가 국민복지 확대를 위해 기업이나 시민사회가 스스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예를 들면 정부는 보육시설을 비롯한 주민복지센터를 신축하는 대학교에 매칭 펀드를 제공하고, 이 분야를 전공한 교수와 학생들을 주민복지 제공에 직접 참여시켜 정부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이는 지역사회-대학 간 유대를 강화하고, 대학의 현장교육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고 보다 중요한 것은 인수위가 새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학, 기업, 시민사회의 참여를 유도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김용호 인하대 정치학과 교수